어머니 ‘전화 한 통’ 먹먹함이 밀려와
어머니 ‘전화 한 통’ 먹먹함이 밀려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2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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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요일 저녁 8시가 되면 어김없이 한 편의 드라마를 시청한다. 늘 떨어져 생활하는 아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다. 10여년째 울총(울산총각)으로 지내다 주말이 되면 대전으로 올라가 아내를 만나기에 주말에는 웬만한 일이면 같이 하고자 노력한다. 직거래장에 가서 물건도 사고 영화도 보고 주일 새벽미사도 드리면서. 아내도 서울에 계시는 장모님께서 즐겨 보시는 드라마라서 대화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시청하기 시작했단다. 가족숫자는 점점 줄어드는데 그나마도 아이들과 다함께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도 덩달아 줄어드니 속이 상할 때가 많다.

요즘은 젊은이들 눈높이에, 어르신 눈높이까지 가늠하느라 이래저래 우리 세대는 힘들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보다. 하기야 대학강단에서 한문학을 가르치는 한 친구는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요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주중에는 직장 위주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으므로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가정 중심의 생활 패턴으로 바꾼 지 꽤 오래다. 그래도 주말 오전에는 조용한 서재에서 커피향을 맡으며 이런저런 신문 칼럼과 발표자료를 준비하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지난 주 토요일이었다. 오후 5시경에 내 핸드폰에서 카톡카톡 소리가 울린다. “잘들 지내고 있니? 11월 29일이 생일인데 생일상 같이 먹으러 가면 좋겠는데 평일이라 같이 가 줄 사람이 없구나.” 올해 구순을 맞으신 어머니다. 작년에 어머니를 뵈러갔을 때 골동품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꿔드리면서 문자 주고받는 방법을 알려 드린 적이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던 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전화기로만 사용하셨다. 치매 예방에도 좋을 듯하고 예전에 글솜씨가 있던 터라 지레짐작으로 가르쳐 드렸다. 예상을 뒤엎고 그 후론 꽤 긴 문장의 문자를 정성껏 보내 주신다. 우리 형제들 단톡방에도 초대했는데 거기서도 맹활약을 하신다. 문자인지 카톡인지는 구분을 못 하지만 그저 받는 대로 최대한 빨리 대답을 주신다.

사연인즉, 7남매 중 올해 육십이 되는 셋째아들의 생일을 기억하고 함께할 수 없음에 그 안타까운 마음이 피부에 와 닿는다. 구십을 훌쩍 넘겨도 육십이 다된 아들 걱정이라니 가슴이 먹먹했다. 아무런 답신을 못 드리고 저녁식사를 마치니 고대하던 드라마가 시작되어 아내와 함께 보게 되었다. 한창 드라마에 몰두해 있을 때 진동모드로 놔둔 핸드폰에 불이 들어왔다. 슬쩍 보니 어머니였다. “문자를 보내도 아무 대답이 없길래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 뜨끔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그날은 수요일이라 제가 울산 가 있어요” 했더니 “울산? 지진 많이 조심하거라” 하신다. “제가 시간 내서 평일날 서울로 찾아뵐게요” 크게 소리쳤더니 “그럴래? 연락주거라”하시며 전화를 끊는다. 어머니는 10여년 전부터 귀가 어두워지면서 특히 전화통화가 힘든 상태다.

죄송스러운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결혼하고 어머니 곁을 떠나 대전으로 내려간 후, 처음에는 서울로 출장가면 꼬박꼬박 부모님을 뵙고 내려오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띄엄띄엄해지다가 이제는 무슨 날에만 찾아뵙는 신세가 되었다. 대학원 시절에도 어머니가 남대문시장을 가시면 함께 가서 열손가락 가득 까만 비닐봉투를 들고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단지 멀리 떨어져 있고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는 늘 그 자리에 계신데 우리 자식들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조금 서운해도 “괜찮다”하시며 ‘자식 걱정에 편할 날 없다’는 어머니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스승존경과 부모효도를 강조할 때 항상 인용하는 문구가 있다.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子欲孝而親不待(자욕효이친부대)’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가만히 놔두지 않고, 자식이 효도를 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에 감동하고 때론 서운하더라도 그래도 모든 걸 이해하는 어머니. 자주 찾아뵙진 못 해도 먼저 전화 한 통 드리는 것이 도리인 것을 그조차도 소홀히 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열린교육학부모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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