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지열발전이 불렀나?
포항지진, 지열발전이 불렀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26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항이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학술적 여진’ 탓이다. 주택을 2만4천여 채나 망가뜨린 규모 5.4 포항지진의 원인이 지열발전(地熱發電) 때문이었나, 아니었나 하는 문제로 학계, 전문계가 연일 시끄럽다. 경북의 한 언론은 “대체 청정에너지원으로 ‘러브콜’ 받던 지열발전, 포항지진의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이 번지면서 애물단지 전락 위기”라는 촌평을 실었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는 데 1년도 더 걸린다니 여진(餘震)공포에 시달리고 지친 포항시민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져 내릴 일인지도 모른다.

이명박정부 시절 지식경제부와 포항시가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에서 ‘MW(메가와트)급 지열발전소’ 기공식을 가진 것은 2012년 9월 25일의 일이다. 당시 언론들은 “지열발전소는 총사업비 473억원을 들여 2015년에 완공할 예정”이라고 송고했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2년 전에 완공했어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렇다면 공사는 어느 정도 진척을 보았을까? 관계당국에 따르면, 2년간의 조사와 검토를 거쳐 내년부터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지하 4.2∼4.3㎞ 지점에 지열발전 우물(井) 2개의 시추를 이미 완료한 상태다.

지열발전소 문제를 처음, 그러나 조심스레 제기한 것은 JTBC였다. 이 매체는 지난 21일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의 지론을 인용, 지열발전소가 땅에 물을 주입한 다음날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한 사실을 들어 연관성에 대한 물음표를 던졌다. 그 파장은 엄청났다. 정부를 움직였고, 학계도 움직였다. 산업부는 22일 “국내외 지질·지진 전문가로 조사단을 꾸려 포항 지열발전에 대한 정밀진단에 나설 계획”이라며 공사 중단 소식도 같이 전했다. 전문가 그룹에 미국·일본·독일 전문가와 이진한 교수를 포함시킨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진한 교수는 24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항지진 긴급포럼’에서도 자신의 지론을 펼쳐 보이며 포항지진 발생과 지열발전의 연관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파장을 의식한 듯 “다만 이건 정답이 아니며, 상당한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도 보였다. 지열발전을 할 때처럼 물과 같은 유체(流體)를 땅속에 주입할 때 흔히 발생한다면서 ‘유발지진’의 개념을 설명하며 외국의 실증사례도 예시했다. 참고로, 지열발전소를 논의할 때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스위스 바젤이다. 스위스 당국은 2009년 12월 규모 3.4 지진이 발생하자 원인이 지열발전소에 있다고 보고 건설을 영구적으로 중단했다.

지열발전소 측이 땅속에 물을 주입한 사실이나 그 때문에 생긴 유발지진의 존재는 산업부 자료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열발전소가 물을 주입한 바로 다음날 기상청에서 가까운 지역의 지진을 몇 차례 감지했다는 사실도 그 중 하나다. 2016년 12월 15~22일 3천681㎥의 물을 주입했더니 다음날(12월 23일) 포항 북구 북쪽 9km 지역에서 규모 2.2의 지진이 일어났고, 2017년 4월 6~14일 1천621㎥의 물을 주입했더니 다음날(4월 15일) 포항 북구 북쪽 8km 지역에서 규모 3.1과 2.0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 등 사례는 수두룩했다.

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포항지진 긴급포럼’(11. 24)에서 지열발전과 포항지진의 상관관계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나타냈다. 홍태경 연세대 교수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고 다른 참석자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여러 모델의 검증을 거친 다음 결론을 내리자고 의견을 모았다. 흥미로운 것은 포항지진 설명 과정에서 드러난 기상청의 ‘발표 뒤집기’다. 기상청은 처음 발표와는 달리 포항지진의 진앙을 지열발전소 2㎞ 지점이 아닌 500m 인근으로, 깊이를 9㎞가 아닌 3∼7㎞로 수정해 의혹을 자초했던 것이다.

셰일가스든 지열발전이든 땅속에 충격을 주면 ‘유발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렇다고 포항지진이 지열발전 때문이란 얘기는 아직 아니다. 하지만 신(神)의 영역에 접근하는 일만큼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어 그대로 전하고 싶을 따름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