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1번지에서 긍정적인 삶과 행복한 노년을…”
“행복1번지에서 긍정적인 삶과 행복한 노년을…”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11.2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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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숙기 함월노인복지관 관장
▲ 장숙기 함월복지관 관장.

교회 부름받아 늦깎이로 사회복지 도전

노인 회원들이 월요일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회복지시설이 있다. ‘노인복지’라면 엄지를 내세우는 ‘종갓집 중구’가 사회복지법인 ‘밝은미래복지재단’에 맡겨 2년째 운영 중인 중구 유곡동 함월노인복지관(종가3길 15)이 바로 그 시설. 2015년 12월1일 문을 열었고 다음달 1일은 개관 2주년 되는 날이다.

‘중구 거주 만60세 이상 어르신’에게만 회원자격이 주어지는 이 복지관의 수장은 회원들 사이에 ‘미인 관장’으로 통하는 장숙기 여사(57, 울산교회 권사). 전업주부의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사회봉사의 길에 늦깎이로 뛰어들었고, 이 모두 ‘밝은미래복지재단’의 설립주체인 울산교회의 부름 때문이었다. 사회복지사 경력이라곤 고작해야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남구의 ‘문수실버복지관 10년 팀장’ 경력이 전부였다.

겸손함이 그래서 몸에 밴 것일까? 장 관장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려고 애쓴다. 공(功)도 아랫사람들에게 돌린다. “아직은 미숙한 게 너무 많아요. 제가 복지관을 수개월째 큰 탈 없이 이끌어올 수 있었던 건 든든하게 받쳐주는 권은영 과장(40)과 이주연 팀장(37)이 제 곁에 있었기 때문이죠.”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장 관장을 지근거리에서 그림자처럼 뒷바라지해 온 이 두 측근은 문수실버복지관에서도 인정해주는 엘리트들이었다. 함월노인복지관 설립 당시 이곳으로 특별히 파견돼 ‘창설멤버’ 역을 톡톡히 맡아 온 주역들이었다. 장 관장이 2012∼2014년 울산대 정책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것도 사실은 함월노인복지관 설립을 염두에 둔 사회복지법인 측의 사전포석이었다.

쾌적한 휴식처…200명은 ‘매일 살다시피’

지난 17일 중구 혁신도시의 어느 전통찻집에서 만난 복지관 사람은 장숙기 관장과 대구대에서 산업복지학을 전공한 권은영 과장. 먼저 권 과장이 약 2년 전 개관하던 무렵의 일부터 떠올렸다. “그야말로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셨죠. 어르신들이 복지관 개관을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리고 계셨는지 알 수 있었어요. 많이들 기다렸다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어요.”

그 이전까지 중구의 노인복지시설은 병영의 ‘중구노인복지관’ 한 곳뿐이었다. 함월노인복지관의 탄생을 기다렸던 분들은 대부분 서부권(성안, 태화, 우정, 유곡) 거주 어르신들이었다고 했다. 권 과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엔 등록회원이 1천 명 정도였는데 한 달 뒤엔 무려 3.7배나 되는 3천700명의 어르신들이 등록을 마치셨지요.”

지금은 어느 정도 정돈이 이뤄진 편이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론 직권들이 시간희생을 참아내야 한다. 원래는 복지관의 문을 열고 닫는 시간대가 오전 9시∼오후 5시이었지만 현재는 오전 8시 30분∼오후 6시로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좀 늦게 오시라 해도 굳이 일찍 오셔서 줄을 서서 기다리가 문이 열리기 무섭게 들어가시는 어르신들이 의외로 많답니다.” 그만큼 복지관이 ‘편안하고 안락한 내 집’처럼 느껴져서일 것이다.

장 관장에 따르면 ‘하루 종일 계시는 분’이 200명에 가깝다. 점심식사 장소인 ‘함월무지개다리’ 건너편 중구종합사회복지관 1층 ‘경로식당’에서 하루에 끊는 한 끼 1천 원짜리 식권만 320명 분. 실제로는 더 많다는 게 권 과장의 귀띔이다.

복지관을 이용하는 노인들을 성별로 보면 어금버금하지만 그래도 할머니(51%)가 할아버지(49%)보다 조금 더 많다. 거의 대부분 일자리가 없는 분들이고 평균연세는 70대 중반이라 했다. 이만 하면 소일삼아서든 취미생활을 위해서든 함월노인복지관이 중구 관내 어르신들에겐 더 없이 쾌적한 휴식공간이 아닐 수 없다.

노래방 ‘1인1곡’ 지킴이도 자원봉사자들

무엇이 노인들을 ‘복지관 붙박이’로 만들었을까? 장숙기 관장은 ‘훌륭한 시설’과 ‘훈훈한 분위기’를 우선순위에 올려놓는다. 시설 얘기가 나온 김에 지상 3층, 지하 1층인 복지관 건물의 공간배치를 잠시 들여다보자.

관장실·사무실과 자원봉사실·상담실·세미나실이 배치된 1층은 물리치료실과 체력단련실이 회원 끌어들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운동처방사가 물리치료실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37명에게만 기회를 주어 진행하는 ‘알통(알아서 척척, 통증이여 안녕!)’ 프로그램은 복지관에서 손꼽히는 인기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당구·탁구대와 장기·바둑판이 제대로 갖춰진 2층 여가시설은 썰렁한 기운마저 사람의 열기가 내쫓고 마는 몰입의 공간. 특히 포켓볼대 둘과 당구대 다섯을 합쳐 모두 7대가 빼곡히 들이찬 당구장은 어르신들의 오락경연장이나 다름없다. “시설이 좋다보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찾아오셔요.” 하지만 이날따라 포켓볼대를 점령(?)한 할머니 몇 분의 존재는 장 관장의 말을 잠시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열기가 지나치다 보면 다툼이 생길 수도 있는 법. 복지관 측은 그럴 경우도 가정해서 지혜로운 대비책을 세웠다. 분위기도 추스를 겸 자원봉사자 20여 명으로 구성된 ‘함월 지킴이 봉사단’에게 몇 가지 임무를 부여한 것.

봉사단원들은 청소나 환기는 물론 자질구레한 일까지 서슴없이 찾아 나선다. 복지관을 처음 찾는 노인들에게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고, 상담과 회원등록(회원증 발급)을 도와주거나, 식권을 끊어주기도 한다.

이분들의 영향력이 돋보이는 또 다른 공간은 3곳 모두 늘 북적거리는 3층 노래방(노래연습장)이다. 워낙 노래솜씨 뽐내기를 좋아하다 보니 신청곡이 ‘1인 1곡’으로 제한된 사실을 잠시 잊은 채 2곡 이상 부르겠다고 고집하는 분이 이따금씩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분을 점잖게 타일러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것도 봉사단원들의 몫이다.

 

▲ 함월복지관 할아버지, 할머니 회원들이 당구를 치고 있다.

웃음 되찾은 어르신 덕에 당구대 천갈이

지난 3월에 부임한 장숙기 관장이 오자마자 추진한 일은 ‘따뜻한 복지관 만들기’, 바꾸어 말해 ‘예쁜 화단 가꾸기’였다. “화단의 화초들이 대부분 겨우내 말라죽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일손을 구하고 화초도 구했다. 전화 한 마디에 중구청에서 화분 500개를 실어다 주기로 했다. 그렇다면 일손을 어디서?

이것도 오래 끌진 않았다. 할머니 한 분이 농사일에 경험이 많은 남자 한 분을 추천해 주겠다고 제안해 왔다. 좋다고 했더니 당장 호미를 들고 와 화단을 가꾸기 시작했다.

이 두 남녀 어르신은 알고 보니 김종백(76)-오영자(77) 부부였다. 이 두 분은 지금까지 8개월이 넘도록 ‘화단 물주기 당번’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해 오고 있다.

“그 뒤로 복지관 분위기가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예쁜 복지관으로 변모한 거죠. 그동안 베고니아도 금계국도 고 어여쁜 꽃망울들을 소담스레 피워냈고요.” 이 순간, 장 관장의 표정이 수줍고 해맑은 소녀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장 관장은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며 지난해 말 복지관에서 두 번째로 펴낸 소식지 ‘실버 파워’ 1면 하단 사진을 자랑스레 펼쳐 보였다. 아들 셋과 며느리 셋을 두고 있는 신원태 어르신(78)의 얘기였다. “한 번은 자제분이 찾아와 그러는 거예요. 복지관 다니신 후로는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님이 웃음을 되찾으셨다고.” 그러면서 감사의 표시로 금일봉을 쥐어주고 갔다고 했다.

이 돈은 당구대 7개의 ‘천 갈이’와 어르신들 간식 대접에 쓰였다.

‘죽음준비(Well-dying) 교육’에도 관심

“저보고 성질이 급하다고 해요. 하긴 대책이 서면 바로 실천에 옮기곤 하죠.”‘급한 성질’은 과단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에 결심한 일이 하나 있다. 앞으로 복지관 프로그램에 ‘죽음준비 교육’을 반영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겠는지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게 하는 교육이죠. 제가 보기에 어르신들 대다수가 자신의 삶에 대한 계획이 없고, 구체적인 노후 설계도 없고 하루 하루 시간 때우기에 급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자기관리능력을 키울 수 있는 ‘죽음준비 교육’ 즉 ‘웰다이잉(Well-dying) 교육’이었죠.’

장 관장은 또 그런 교육이나 남과 공동체의식을 갖고 한데 어울리게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들이 삶의 태도 바꾸어 남도 생각하고 사회에 기여하면서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시게 옆에서 적극 도와 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안내를 받아 복지관 3층까지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어르신들의 표정이 꾸밈이 없고 하나같이 밝다. 웃음도 애써 꾸민 웃음들이 아니라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웃음들이다.

함월(含月).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머금은 달’이다. 어르신들의 표정도, 장숙기 관장이나 권은영 과장의 표정도 이날만큼은 많은 것을 포근하게 껴안아 줄 것만 같은 함월산의 달(月)을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장 관장은 경주가 고향. 중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울산으로 와서 결혼도 울산에서 했다. 슬하에 장성한 두 딸을 두고 있다. 장녀(30)는 충북대병원 인턴, 차녀(20)는 벤처기업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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