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 칼럼] 아리랑
[박정학 칼럼] 아리랑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20 2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리랑’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한국인과 가까운 많은 외국인들도 알고 함께 부르는 우리나라 ‘제2의 국가’, 아니 사실은 애국가보다 더 많이 사랑받는 우리 겨레의 정서를 대표하는 노래다. 그리고 정선 아리랑을 비롯해 여러 가지가 있으며, 박자와 가락만 약간 달리하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그 분위기에 어우러지는 신기한 노래다. 그래서인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뽑히기도 했고, 지금은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 아리랑 곡조에 찬송가 가사를 붙여서 부르는 교회가 늘어난다는 소식도 들린다.

나는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몇 년 전,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음정인 ‘라’ 음에 가까운 음이 많고 반복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리랑을 연주하여 세계 학생관현악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일본 어느 고등학교 음악선생의 인터뷰에서 듣고, 그 먼 옛날에 그런 것까지 알았던 조상들의 지혜에 놀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리랑’이 무슨 뜻이냐?’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이 없다. 사단법인 한배달에서 1998년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피맺힌 한(恨) 36%, 사랑하는 님 14%, 이상향에 대한 향수 18%, 모르겠다 28%”로 나타났다. 대학교수를 하는 내 친구로부터 “미국 유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미국인으로부터 ‘한국 사람들은 모이면 아리랑을 부르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당황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모두가 가슴으로 아련히 느끼고는 있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한(恨)서린 마음, 육체적 나를 떠나 바라보는 자신의 ‘본성’(我離朗), 「이상향」 또는 「진리에의 귀의」, 위대한(큰) 태양 같은 님 등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음악계와 교육계에서는 아직도 표준 의미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내가 주관한 ‘홍익인간 바로알기 담론회’에서 어울림과 관련되는 의미라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아리’는 울산사람들이 많이 쓰는 ‘아리아리하다’ ‘아리송하다’ ‘아린다’ 등의 단어에서 보듯이,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어 똑 떨어지게 말하기가 어려운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고, ‘랑’은 너랑 나랑 등 두 사람의 어울림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리랑’은 너와 나를 남이 아니라 어우러져 ‘우리’가 되도록 하는 ‘아리아리한’ 무엇을 지칭하는 말인데, ‘우리’가 되도록 그것을 북돋우어 신바람이 나게 만드는 노래가 아리랑인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는 보이지 않는 정으로 어우러져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그러려면 나의 이익을 참는 고비를 넘겨야 함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같이 어우러지다가(랑) 떠나는 사람을,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어우러지지 못하는 사람은 잘 되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의미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음정이라면, 같이 부르는 사람을 한 덩어리로 어우러지게 만드는 기운을 각자가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가 넘이 아니다’는 것은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신바람을 불러일으켜 너와 나를 ‘우리’로 어우러지게 만드는 데 쓰이는 노래가 ‘아리랑’이라고 하면, 제천행사 등의 단합잔치와 음주가무를 즐긴 우리 겨레의 정서에 딱 맞을 것 같다. 참으로 멋있는 우리 조상들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지혜를 가지고 있었으며, 몸으로 실천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대학까지 졸업해도 아리랑의 정확한 의미조차 모르고, 자주 아리랑을 부르도록 가르치지 않는 교육 현장이 안타까울 뿐이다. 화랑들의 어울림 교육 현장인 천전리 바위그림(刻石)을 가진 울산 사람이라면 아리랑도 이렇게 해석해야 하는 것 아닐까?

박윤경 중구 병영1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