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덕균 형을 추모하며
故 김덕균 형을 추모하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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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4일 오후 5시쯤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소. 미안하고 허망한 마음에 눈물도 나오지 않는 비통한 심정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소. 나의 오랜 벗 당신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는 전화였소.

나의 벗 덕균씨!

변명 같지만 불과 한 시간 전 당신의 병문안을 가자고 후배와 시간약속을 한 조금 뒤 아침에 병원을 다녀온 친구로부터 병세가 어렵다는 전화를 받고 “내일은 일찍 병원에 가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비보를 접했던 것이오. 무엇이 그렇게 바쁘다고 그리 급히 가셨소?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많고, 그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사회발전에 반의반도 전하지 못했는데….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곁을 매정하게 떠난 당신이 참으로 원망스럽소.

당신은 비록 나이는 나보다 적었지만 언제나 사려 깊은 생각과 합리적 판단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형 같은 사람이었소. 당신을 처음 만난 기억은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다니던 중학교 한 해 후배로 입학한 지 몇 달이 지나서가 아니었던가 싶소. 참 조용하고 귀티 나는 용모에 명석해 보인 당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오.

그러나 당신과 나는 한 해 선후배라 사이라는 것 때문에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별로 만날 기회가 없었소. 하지만 우리는 20대 초반, 중학교 진학을 못한 청소년들을 모아 야학을 하던 대현재건중학교에서 다시 만나 지금까지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당신도 두 말 없이 동의할 것이요.

김형!

그때가 우리 청년기의 절정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고, 우리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괜찮지 않나 싶소. 당신은 항상 제자들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서 해결했고, 늦게 수업이 끝날 때면 제자들을 집까지 바래다주는 참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소.

글재주와 그림재주가 뛰어난 당신의 지도하에 학생들의 시화전을 매년 성남동 ‘수 다방’ 같은 곳에서 열어 적은 돈이지만 제자들에게 보탬이 되도록 했던 일들이 새삼 떠오르오. 그때의 그 제자들이 이번에 당신의 영정 앞에 엎드려 우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허무한 현실에 눈물밖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소. 그때 함께했던 교사들 또한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소?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당신이 “참새가 방앗간을 어떻게 그냥 지나갈 수 있겠냐”며 할머니 대폿집 막걸리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주인공은 누구도 아닌 당신이었소. 여름방학 하계수련장에서 있었던 즐거운 추억이며 졸업식 날 헤어짐이 아쉬워 그토록 펑펑 울던 당신의 모습을 아직도 많은 지인들이 기억하고 있을 거요. 당신은 참으로 속 깊고 인정 많은 사람이었소.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벗 덕균씨!

당신은 부모님께 너무 잘해드리는 효자였고, 형제지간에는 동생들 걱정 참 많이 하던 맏형이었기에 형제가 없는 나에게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소. 방황하던 둘째를 나에게 부탁하던 일이며, 늦둥이 막내 걱정을 그렇게 많이 하던 일까지, 나는 어느 한 장면도 차마 놓칠 수가 없을 것 같소.

당신이 산 세월을 돌이켜보면, 당신은 언제나 남에게 베풀기만 하는 사람이었소. 새마을지도자를 시작으로 국회의원, 시장 선거에서 당신이 뒷바라지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건만 선거가 끝나면 당신은 언제나 뒷전이었소. 찾아가 한번만 고개 숙이고 부탁하면 될 일도 끝내 마다하던 당신을 그 사람들이 선거철에 다시 부르면 싫은 내색도 없이 도와주던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소. 지인들이 그 사람들을 욕할 때 아니라고 말하던 사람도 당신이었고, 어려움이 있어도 어렵다는 말 한마디 없이 상대의 거친 말도 속으로 걸러 좋은 말로 남에게 전하던 사람 또한 당신이었소.

뒤늦게 도서관 관장으로 출근을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내가 출근하는 이상으로 얼마나 좋아들 했는지 당신은 아마 모를 거요. 3당 합당 전까지 나와는 정치적으로 늘 반대쪽에 있었지만 우리는 한 번도 얼굴 붉힌 적 없었지 않소? 이 또한 당신이 겸손했기에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소.

13대 남구 국회의원 선거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당신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요. 몇 사람이 다치고 형사문제까지 발생한 선거전에서도 당신은 여당의 조직부장, 나는 야당의 조직부장으로서 서로를 격려하며 원만하게 끌고 갔던 기억이 당신이 떠나가고 나니 더 새록새록 되살아난다오. 선거 중에 만나면 항상 대폿값은 물론 “심 선배.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로 분위기를 만드는 여유가 넘친 당신이었는데, 어찌 우리의 우정을 이어가는 여유는 이렇게도 야박한지, 그 이유를 나는 모르겠소.

나도 당신에게 진 빚이 참 많은 사람이요. 내가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당신은 늘 멀리 있었고, 그것이 당신이 나에게 베푸는 배려라는 것을 그땐 정말 몰랐었소. 나의 우둔함을 뒤늦게나마 용서하시오.

김형!

이제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이승에서 못다 이룬 꿈 저 세상에서 마음껏 펼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리오. 영면하소서, 나의 친구 덕균씨!

심규화 대한체육회 이사, 전 울산시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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