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은 여러 가지 색이라 아름답다
단풍은 여러 가지 색이라 아름답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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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홍엽, 깊어가는 가을에 누구나 시상이 떠오르고 시인이 되고픈 것은 무슨 이유일까? 가을에는 꼭 한번 생각나는 것이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이다. 수필을 쓴 의도보다 문장이 그대로 서정적으로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필가가 기억하는 냄새와 내가 어릴 때 낙엽을 태우다 옷 깊숙이 밴 냄새가 세월이 지나도 똑같은 냄새로 남고 또 우리 아이들도 그런 냄새를 그리워 할 때가 있을 것이다.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나무는 자기의 겨울 채비를 갖춘다. 그러기 위해서 잎의 양분을 줄기로 보내면서 잎을 떨어뜨린다. 결국 잎은 양분이 부족한 탓에 색깔이 노랗고 빨갛게 변하는 것이다. 나뭇잎은 자신을 떨어뜨린 나무가 야속한 조락(凋落)의 계절이 아름답게 보이는 역설이 생긴다.

단풍은 여러 가지 색깔이 어울려야 아름답다. 녹색의 잎만 있을 때를 신록(新綠)이라 말하듯이 식물의 잎의 색깔로 계절을 나타내고 표현하기도 한다. 잎은 자신이 떨어지면서 나무가 산다는 것을 알고 그냥 눈물 없이 마른 잎으로 멀어져 간다. 오히려 자신이 품고 있는 수분과 양분까지 줄기로 보내고 스스로 연결고리를 끊고 가볍게 떨어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별이 있을까? 참 아름다운 이별이다.

겨울을 위한 계절의 이별을 앞둔 가을에 나무는 겨울바람을 피할 수 있게 덩치를 작게 하는 준비를 한다. 단풍은 막 떨어지기 전보다 이별 채비를 할 때 더욱 아름다운 색깔과 자태를 뽐낸다. 녹색 잎에서 한 귀퉁이 또는 중앙 부분부터 변색되어 가는 모습이 벌써 추분(秋分)을 알려주고, 상강(霜降)이 지나 입동(立冬)이 되면 돌담길 낙엽 밟는 바스락거림의 소리가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단풍, 낙엽은 나무에게 있어 마지막이 아니고 더 풍성한 내일을 위한 지혜로운 준비이며 희망의 약속이다. 누구나 아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낙엽이 자신의 희생을 통해 누군가에게 생명의 존귀함과 희망을 건네줄 수 있다는 것은, 몇 계절을 지나는 동안 자신의 본분을 다했음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있어서도 계절의 변화를 유난히 타는 사람이 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란 말도 그래서 나온다. 특히 중년 이상의 남자들은 가을에 더 외로움을 타고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다.

단풍처럼 지금이 가장 화려하다. 낙엽이 될 것을 생각하지 말고 나무를 위해 아낌없이 주고 간다고 생각하자. 자신만이 소외되고 끊어진 철길로 생각하고 추워지는 겨울이라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시간의 연속선상에 올라서 있으며 나로 인해 세대가 연결되고 관계가 형성되고 나로 인해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자.

세상은 물질로만 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약물을 투여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통증이 완화되기도 한다. 물질이 정신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똑 같은 사물과 현상을 보고 서로 다른 표현을 한다는 것을 두고 다양성과 창의성이 높다고 하며, 이것이 사람과 세상이 살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물주가 세상을 동일하게 만들지 않은 것은 더 아름답게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덕수궁 돌담길의 단풍이 울산에는 없지만 더 자연스러운 단풍길, 낙엽 쌓인 길이 있다. 신불산 억새길, 문수 체육공원, 성안 옛길, 태화강 대공원과 대왕암 가는 길, 대운산 등 우리 주위에 아름다운 길이 많이 있다. 만추(晩秋)에 여유 있는 산행으로 시몬이 밟은 낙엽 소리를 한번 들어보는 것은 삶의 여유이고 운치라 생각된다. 파란 하늘 한번 쳐다보며 계절의 변화를 낙엽 밟는 소리로 들어보고 온몸으로 느껴보자.

우항수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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