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기요마사(加藤?正)’의 소환
‘가토 기요마사(加藤?正)’의 소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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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학성공원’으로 불렸던 울산왜성(蔚山倭城, 일명 島山城, 중구 학성동)은 필자에게도 감회 깊은 곳이다.

20년 전 울산 풋내기 시절, 숙소가 이 근처여서 자주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은 너무 달라졌다. 정체성부터가 그렇다. 엄연히 ‘근린공원’인데도 ‘역사문화공원’인지 ‘동백공원’인지 그저 모호할 뿐이다. 설명판은 왜색(倭色)이 너무 짙어 탈이다.

지난 주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올 들어 다섯 번째다. ‘학성공원’에 ‘르네상스’를 입히겠다는 ‘학성 르네상스’ 사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는지 궁금한 탓도 있었다. ‘상근(?)노숙자’들의 시선을 피해 서쪽 정문 대신 ‘교통카드판매소’ 쪽 길을 택했는데 이는 행운이었다. 구면인 ‘학성공원노인회’ 회원 한 분과 우연히 마주쳐 길잡이 겸 길동무로 삼을 수 있었던 것. 2009년 2월에 발족한 이 노인회의 회원 65명은 ‘공원편의시설 개선’ 하나만을 바라며 뭉친 공원의 지킴이이자 산 증인들이다.

공원노인회의 가장 큰 희망사항은 노약자도 다닐 수 있는 산책길의 확보(신설)였다. 그러나 많은 예산이 필요 없는 이 소박한 꿈은 구청 쪽의 배짱행정에 구겨진 것 같았다. “노인회 간부진이 구청장을 면담하던 그날(9월 25일) 구청에서 나와 민가 가까이서 자라던, 냄새 독한 은행암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동백나무를 여러 그루 심은 모양입디다.” 오래전부터 나 있던 민가 쪽 산책길의 중간허리가 잘렸다는 얘기였다.

쉬 수긍이 안 가는 변화 가운데 또 하나는 예산을 들여 뜯어고친 계단식 보행로가 노약자들의 보행을 사실상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길동무 노인이 한 말씀 거들었다. “흙길 그대로 놔두면 걸어서 오르내리기가 훨씬 편한데 뭣 땜에 돈 주고 그 짓 해놨는지 모르겠습디다.” 사실이 그랬다. 보행로 사이사이에 깔아놓은 크고 작은 석재(바윗돌 등)는 그 틈새가 너무 벌어져 어른이라도 건너뛰듯 해야 걸음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인지 왜성 주변에 사는 산책객들은 가장자리 흙을 계단식으로 군데군데 새로 파놓았다. 박상진 의사 추모비가 있는 첫째 마당(三之丸·산노마루→제3본성)의 서쪽 진입로 격인 직각모양 돌계단은 키가 너무 높고 다칠 우려가 많아 어느 한 사람 입을 안 대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어찌 보면 ‘학성 르네상스’는 이용객 편의에는 아랑곳 않는 ‘돈 먹는 하마’인지도 모른다.

가장 놀라운 것은 울산왜성 서쪽 입구와 주차장 사이 화단 언저리에 동상 2개와 부조를 연말 안에 설치한다는 사실이다. 귀동냥에 따르면 동상 하나는 정유재란(丁酉再亂) ‘도산성(울산왜성) 전투’ 때 조선군 도원수로서 참전한 ‘권 율 장군’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 안에 칩거하며 조명(朝明)연합군에 맞서다가 결국은 쫓겨난 왜장(倭將)의 동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 왜장은 누구일까? 그리고 동상은 어떤 모양새일까? 잘라 말하면, 왜장은 왜성을 직접 설계하고 축성을 지시한 ‘가토 기요마사(加藤?正)’밖에 없다. 들리는 소문에는 이 왜장의 동상이 ‘권 율 장군과 맞장을 뜨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한다.

울산왜성 분야의 전문가 이창업 울산과학대 교수(울산시문화재위원)는 지역 일간지에 실은 글에서 도산성 전투가 한·중·일 3국의 이해관계가 맞부딪친 ‘국제전투의 현장’이라며 역사문화재로 보호하면서 도시공원으로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결과론적 얘기지만 ‘학성 르네상스’ 사업은 이 교수의 이 같은 구상대로 착착 진행되는 느낌이 짙다. 예외가 있다면, 일부 정치권의 입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차제에 이 교수로부터 몇 가지 해명을 속 시원히 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

동아시아 3국 군대가 뒤엉킨 도산성 전투에서 나름대로 활약한 경리 양호(楊鎬), 제독 마귀(麻貴) 등 명나라 장수의 동상은 왜 안 세우는지, 그리고 권율 장군과 위상이 비슷해진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正)’를 왜 하필 이 시점에 소환하려 하는지에 대해….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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