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일기]숫자에 노예 된 사람들
[목회일기]숫자에 노예 된 사람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1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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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생활에서 숫자를 없애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숫자는 우리의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수를 세는 데서부터 물건을 세고 돈을 세는 것뿐 아니라 물건을 사고 계산할 때, 차례를 정할 때, 시간을 말할 때 쓰이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숫자를 말하지 않고는 사실상 대화가 불가능하다.

숫자를 언제부터 사용하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원전 4천년경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늘어나는 짐승을 관리하기 위해 60진법을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 마디를 세면 12개를 셀 수 있고 12개를 셀 때마다 왼쪽 손가락 하나씩을 접으면 12, 24, 36, 48, 60까지 셀 수 있는 데서 60진법이 생겼다고 한다.

오늘 숫자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숫자에 너무 예민하다 보니 숫자로 인한 폐단도 많은 것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영방송과 종합편성 채널을 합하면 수십 개의 방송 채널이 있다. 방송은 국민에게 뉴스를 신속히 전달하고, 국민을 계몽·교육하고, 교양·오락 프로그램으로 국민에게 건강한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공영방송이나 종편방송 할 것 없이 시청률이라는 숫자 경쟁을 하면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비윤리적인 드라마를 방영하고, 예능 프로그램도 시청률에 따라 폐지하고 신설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방송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그럼에도 시청률을 의식하여 비교육적이고 비윤리적인 내용도 방송하고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자극할만한 사건이면 미확인된 내용도 의도를 가지고 편집하여 보도함으로써 특정인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방송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도 있는데 시청률이라는 숫자에 얽매여 경쟁하는 바람에 선량한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숫자에 민감하기는 정치인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 후보, 지방자치단체장 후보,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데도 여론조사라는 숫자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통령,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도 언론에서 발표하는 여론조사의 순위를 보고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여론 조작을 해서라도 지지율을 높이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연구와 조사를 통해 토론하고 점검하여 심도 있게 결정해야 할 국가의 정책이 무작위로 선정된 사람을 대상으로 질문한 여론조사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군중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동원하느냐에 따라 국가사업이 영향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현직 대통령도 탄핵을 당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숫자의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의 교육 성취도를 평가하는 데 점수를 매기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시험지에 출제된 과목별 문항들을 얼마나 잘 맞췄는지에 따라 매긴 점수를 합산한 평균점수로 학생을 평가하고, 높은 점수를 많이 내는 교사를 우수한 교사로 평가하고, 자녀들이 받아온 성적표를 보고 아이를 평가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점수를 올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고 한다. 대학에서는 점수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입시철이 되면 수능점수가 몇 점 나왔느냐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가 된다. 숫자에 예민하고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고 좌절한 많은 학생들이 이 때문에 자살하는 안타까운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학교 교육이 숫자에 매달려 점수 올리기에만 열을 올리는 사이에 자녀들의 인성교육은 뒷전으로 밀리고 10대 청소년들의 범죄가 급증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공부 점수와 관계없는 다른 분야에서 얼마든지 귀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도 단지 점수로 평가하기 때문에 다른 꿈을 꾸지도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폐단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연봉이 얼마인지 연매출이 얼마인지에 따라 성공 여부를 말하기도 하고, 소득금액의 숫자가 높으면 다른 부분이 부족해도 용납되고, 학벌도 인격도 다 훌륭하지만 소득액수가 낮으면 호감도가 뚝 떨어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평가기준이다. 숫자에 영향을 받고 숫자에 연연하는 것은 일반사회뿐만 아니라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목사의 성공 여부는, 교인이 얼마나 모이는 교회를 담임하고 사례를 얼마를 받느냐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의 수를 말하는 통계가 기관마다 다르고 실제 출석하는 숫자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통계로 잡히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교회들이 총회에 교세를 보고할 때는 실제로 출석하는 교인이 아니라 등록된 교인을 기준으로 보고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다 보니 교인 한 사람이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닐 경우 그런 교회마다 이중 삼중으로 통계가 잡혀 허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는 조회 수나 줄줄이 달린 사용 후기를 보고 상품을 주문하거나 맛 집이라고 찾아갔다가 낚였다는 낭패감을 경험해 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시청률이며 여론조사 순위, 판매량 같은 숫자에 속지 말고 시험점수로 사람을 평가하고 숫자에 노예가 되다시피 한 우리를 돌아보고 더 중요한 진짜 참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병곤 새울산교회 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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