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자 이벤트’
‘11월 11일자 이벤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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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천성이 ‘궁리하는 동물’인 모양이다. 틈만 나면 궁리하는 일로 머리 싸매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이한 숫자가 나열된 날짜에 대한 별난 집착도 그런 천성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다. 5월 2일, 10월 10일, 11월 11일 이 세 날을 궁리의 대상으로 삼아보자.

매년 5월 2일이 되면 울산시청 건너편 농협울산본부 앞에 별난 전(廛)이 펼쳐진다. 농협이 숫자 ‘5’와 ‘2’에 대한 끈질긴 궁리 끝에 내놓은 것이 ‘오리(←5·2) 데이’와 ‘오이(←5·2) 먹는 날’이다. 이날은 흥미롭게도 두 가지 이질적인 장(場)이 한꺼번에 다 들어선다. 둘 다 농업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나.

이와는 달리 10월 10일은 중화(中華)사상 되게 좋아하는 한족(漢族)들이 특별히 좋아서 기념하는 날이다. 대만이나 중국에서는 이날을 ‘쌍십절(雙十節)’ 또는 ‘신해혁명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쑨원(孫文)이 기를 불어넣은 신해혁명(辛亥革命)이 1911년 10월 10일에 중국 우창(武昌)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날은 ‘우창봉기(武昌起義) 기념일’이란 또 다른 이름도 있다. 그렇다면 11월 11일은? 우리 한족(韓族)이나 중국 한족이나 이날만큼은 요모조모 뜯어보면서 다양한 궁리를 한 흔적이 뚜렷하다. 재미난 것은 의미부여가 숫자의 생김새에 연유했다는 점이다.

한반도 남녘의 극성 롯데 팬들은 이날을 애써 ‘빼빼로 데이’로 불러 달란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자칭 전문가들’에 따르면, 빼빼로가 처음 선보일 무렵 부산의 여중고생 사이엔 이 과자를 먹으면 몸매가 날씬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오고갔다. ‘이재(理財)의 달인’ 롯데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1997년부터 이른바 ‘이슈 마케팅(issue marketing)’에 뛰어들었고, 빼빼하게 생긴 ‘1’자 모양에 착안, 11월 11일을 ‘빼빼로 데이’로 굳히는 작업에 들어갔다. ‘오리’나 ‘오이’ 소비에 눈독 들인 농협처럼 롯데도 잔머리(?)를 노골적으로 굴린 셈이다.

하지만 궁리, 낮춤말로 ‘잔머리’의 대가라면 중국 희대의 장사꾼인 ‘마원(馬云)’ 알리바바(阿里巴巴)그룹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2009년부터 11월 11일을 ‘광군제’(光棍節·광곤절)로 명명하고 오픈마켓 ‘타오바오’를 통해 독신자를 위한 할인행사를 진행한 양반이 아닌가? 그(알리바바 그룹)는 올해 광군제 행사에서 ‘하루 매출 1천682억 위안(=우리 돈 28조3천78억 원)’이란 역대급 기록을 세워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여기서 ‘광군(光棍)’이란 ‘가지나 잎이 없는 몽둥이’란 뜻으로 독신자나 애인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광군제(光棍節)란 직역하면 ‘독신자의 날’이고, 같은 뜻으로 ‘솔로 데이’나 ‘솔로의 날’로도 불린다. 광군제가 되면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중국 최대의 할인 행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참고로 11월 11일을 ‘광군제’라 처음 부른 이는 난징(南京)지역 대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숫자 ‘1’이 혼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월 1일을 소(小)광군제, 1월 11일이나 11월 1일은 중(中)관군제, 11월 11일은 대(大)광군제로 부른다는 것. 간추리자면, ‘광군제 문화’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퍼졌지만 지금은 어른들의 장삿속이 주무르는 쪽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11월 11일은 또 다른 의미도 지난다. ‘농업인의 날(11월 11일)’에서 힌트를 얻어 ‘가래떡 먹는 날’로 정해 놓았지만 반응이 영 신통치가 못해 걱정이다. 그나마 지난 10일 삼일초등학교를 비롯해 울산지역 어린이집, 초·중·고 30여 곳이 ‘바른 밥상 캠페인’의 하나로 가래떡 잔치에 동참한 것은 큰 박수를 쳐줄 일이다. 학생들은 유기농 쌀로 만든 가래떡과 조청을 먹으면서 우리 쌀에 대한 사랑과 전통음식에 대한 인식개선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가래떡 먹는 날’이 ‘광군제’나 ‘빼빼로 데이’를 보기 좋게 눌러 이길 수 있는 날이 과연 언제쯤 올 것인지?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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