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도령’의 화려한 군무
‘깜도령’의 화려한 군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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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이 지나면서 울산은 철새의 계절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백낭자’ 백로는 미련 없이 떠났고 그 자리를 떼까마귀 ‘깜도령’이 대신 메웠다. 짙은 국향(菊香)의 여운이 너무 짧아 아쉬웠는데 그 빈자리를 떼까마귀의 화려한 군무가 채워주고 있으니 그런대로 위안이 된다.

겨울의 빈객 떼까마귀는 지난달 16일 일흔아홉 마리가 관찰된 이후 현재 약 10만 마리가 울산에서 먹이터와 잠자리를 오가며 서식하고 있다. 울산에서 내년 4월말까지 6개월간 한시적 생활이 진행될 것이다. 매일 새벽 해뜨기 1시간 전부터 서로 소리로써 기상 준비를 한다. 이윽고 40분 전에는 성조(成鳥)부터 서서히 대숲 보금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이소(離巢) 5분이 지나면 동시비상은 절정을 이룬다. 마치 너울성 파도처럼 날아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떼까마귀의 군무(群舞)’라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십 수 년 보아온 떼까마귀의 군무는 울산에서야 새삼스럽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자연적 조류생태관광 자원이다.

이들이 해마다 울산을 찾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겨울나기에 적당한 기온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제주도나 전라남도같이 더 따뜻한 곳으로 내려가지만 영상의 기온이 지속되면 떼까마귀가 울산을 벗어나 겨울나기를 하는 일은 없다. 또 하나는 넓은 면적의 먹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음식재료와 떼까마귀의 먹이는 공교롭게도 똑같은 벼다. 결국 떼까마귀는 벼농사를 주로 짓는 우리나라를 찾아올 수밖에 없다. 울산은 경작지가 전체면적의 약 70%를 차지한다. 떼까마귀가 울산을 찾는 이유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 하나는 잠자리 요건에 적합한 고밀도 대숲의 존재다. 태화강 대숲은 안정적인 숙영지(宿營地)로 활용된다.

몸집이 작은 떼까마귀는 생태적 습성에 따라 이소(잠자리 이동)와 먹이터 이동, 휴식, 숙영지 귀소(歸巢) 등 대부분의 행동을 무리를 지어 한다. 이러한 집단행동은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떼까마귀가 불빛이 환한 도심지 한복판의 전깃줄을 숙영지로 이용하는 수원의 사례에서도 생존전략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울산의 떼까마귀가 삼호대숲의 어두운 곳을 잠자리로 이용하지 않겠나 하는 예측은 잘못이다. 예상과는 달리 떼까마귀는 불을 밝힌 채 영업하는 상가 곁의 전깃줄을 횃대로 사용하기를 즐긴다. 천적인 수리부엉이가 접근하지 못하는 환경을 선호하는 것이다. 밝은 곳을 잠자리로 선택해야만 야행성 맹금류인 수리부엉이와 같은 떼까마귀의 천적 혹은 포식자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행성(晝行性)인 떼까마귀는 같은 조도(照度)에서 야행성(夜行性) 조류가 받는 눈부심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이 같은 행동양태는 떼까마귀의 지능이 매우 높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떼까마귀는 생물학적 특성상 해 뜨기 전과 해 지기 전에 반드시 무리지어 보금자리 상공을 선회하는 독특한 의례를 빠뜨리는 일이 없다. 월동기간 동안 매일 되풀이되는 이러한 행동은 ‘생존의 세리머니(ceremony)’ 즉 생존전략의 한 유형으로, 큰 무리와 그 속 한 개체의 움직임으로 포식자의 눈을 현혹시켜 서로를 가려주는 일종의 은폐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떼까마귀와 갈까마귀는 큰부리까마귀의 울음소리보다 10배 정도나 작게 ‘까악’(떼까마귀 울음)과 ‘째∼액’(갈까마귀 울음)이란 울음소리를 반복적으로 낸다. 작은 소리가 합쳐지면 마치 대규모 집회에서 군중이 지르는 함성과도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함성 같은 큰 울음소리가 포식자에게 사전경고의 메시지로 전달되는 셈이다. 이 같은 행동은 참새, 직박구리, 제비처럼 몸집이 작은 새의 비상행동 모양새에서 쉽게 목격되는 현상이다. 몸집이 작고 개체 수가 많은 조류는 몸집이 상대적으로 큰 조류에 비해 먹이사슬의 낮은 자리에 위치한다. 몇몇 개체수를 희생시키더라도 안정된 종족 번식을 꾀할 수 있는 생존전략으로 진화한 셈이다.

떼까마귀의 날갯짓 세리머니는 서로 날개가 부딪치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 누구나 한번이라도 이들 무리의 날갯짓을 눈여겨보았다면 까마귀류를 가리켜 감히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합지졸’이란 본질과 현상의 해석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해주는 사자성어의 하나인 것이다. 철새는 같은 종(種)이 아니면 결코 무리를 짓지 않는다. 때문에 ‘철새정치인들의 이합집산(離合集散)’ 또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는 표현은 떼까마귀의 생태학적 사실과는 제법 거리가 있다. 떼까마귀는 10만 마리가 함께 날아도 상대와 날개를 부딪쳐 불편을 주는 행위는 결코 하지 않는다. 이는 지난 15년간의 관찰에서 얻은 체험적 진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오는 17일부터 21일까지 남구 삼호동 삼호대숲 주변 ‘태화강 철새공원’ 일원에서는 ‘제8회 아시아 조류박람회’가 열린다. 대만, 중국, 필리핀 등 모두 22개국에서 참여한다. 국내외 조류애호 시민단체와 회원 약 3천명이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새와 다른 나라 새를 함께 찾아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시민 모두가 동참하여 개인적 발전에도 유익한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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