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교권 범위’ 그것이 알고 싶다
‘학생인권-교권 범위’ 그것이 알고 싶다
  • 이상길 기자
  • 승인 2017.11.1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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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인권과 교권의 침해 양상
‘학생인권조례’ 전국 4개시도에서만 제정 운영
시교육청, 국민신문고·언론보도로 확인 실정
침해 기준 모호… 교수권 개념 정립 선행돼야

‘정도(程道)’라는 말이 있다. ‘정도껏 해야 한다’에서 말하는 그 정도로 ‘수준’이란 말로 대신할 수 있다. 학생인권(이하 인권)과 교권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교육현장에서 서로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인권과 교권에서도 무엇보다 ‘정도’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인권침해가 어느 정도로 일어나고 있는지, 또 교권 침해는 어느 정도나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속된 말로 교통정리가 되지 않겠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권과 교권의 침해는 명확한 기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기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해 왔다. 지금 30, 40대를 살아가는 소위 7080세대들에게 교사들의 체벌은 인권침해 축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스승은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유교적인 가르침에 충실했고, 그 탓에 ‘교권 남용’이 교실에서 마구 벌어졌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체벌이라기보다는 교사의 감정이 실린 구타가 횡횡했던 때였다.

그랬던 게 2010년 7월 서울에서 벌어졌던 ‘오장풍 교사 사건(교사가 혈우병에 걸린 초등학생을 무차별하게 폭행한 사건)’이 한 학생의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교권은 뒤집히기 시작했다. 학생인권에 대한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인권이 급성장하면서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교육현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요즘은 교사가 학생의 삶을 위해 내뱉는 단순한 설교도 어떤 때는 인권침해로 클레임이 들어온다고 한다.

결국 인권침해나 교권침해나 당하는 당사자의 피해의식에 주로 의존할 뿐, 객관적으로 이게 학생인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교사의 교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일도양단(一刀兩斷)해서 구분하기는 어렵다.

근본적으로 교사와 학생은 교실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 끊임없이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즉 인권과 교권이 서로 침해를 받고 있다며 목청 높여 외치고 있는 마당에 어느 쪽이 더 상처를 입고 있는 지는 제3자만이 비교적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준비했다. 지금 울산의 교육현장에서는 교사의 어떤 행위가 학생들에 의해 인권침해로 분류되고 있는지, 또 학생의 어떤 행위가 교사에 의해 교권침해로 인식되고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봤다.

◇ 학생인권 침해 현장

사실 인권침해는 울산시교육청에서도 따로 사례를 접수받고 있는 게 없다. 울산의 경우 아직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 학생인권조례는 현재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서울과 경기도,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등 4개 지역에서만 제정돼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울산에서 인권침해 현장의 소리는 시교육청 홈페이지 상에서도 운영되고 있는 국민신문고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나 알 수 있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된 인권침해 건수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근 2년 반 동안 총 57건이 접수됐다. 2015년 1건, 지난해 7건이었다가 올해 들어서는 우신고 인권침해 사건에 무려 42건의 민원이 몰리면서 49건이 접수됐다.

언론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진 우신고 사태의 경우 교사가 교칙인 화장 금지를 어긴 학생을 폭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두 차례나 출동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이 해프닝으로 SNS상에는 해당 교사에 대한 과거 행적들이 ‘우신고를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로 급속히 퍼졌고, 그 내용을 통해 학생들이 인권침해라고 생각하는 교사의 행동을 대략 짐작할 수가 있다. ‘오장풍 교사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인 2011년 3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교사의 체벌이 전면 금지된 만큼 역시나 인권침해는 주로 ‘말’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당시 ‘우신고를 도와주세요’라는 SNS 내용에 따르면 해당 교사가 막 입학한 학생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과거 학생을 폭행했던 이야기를 하거나 주먹을 쥐면서 뼈소리를 내어 위협을 줘 일부러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인권침해로 분류됐다. 폭언에 대한 지적도 있었고, 등교하는 휴대폰을 걷어가는 행위도 인권침해라고 학생들은 주장했다. 우신고의 경우 학생들의 주장 가운데 경찰수사를 유발하는 과격한 내용도 있는데 확인되지 않은 데다 앞서 경찰이 출동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던 해프닝도 두 차례나 벌어졌던 만큼 생략하겠다.

이 외 본보가 SNS를 통해 입수한 지역 내 다른 학교의 인권침해 사례로는 학생회에서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교사의 지적에 대해 모멸감을 느꼈다거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또 교무실에 들어갔더니 교사로부터 일방적으로 “나가”라는 말을 들은 것과 인사를 했는데 교사가 받지 않은 것, 빈 공간이 충분히 있는 복도를 내려가는데 교사가 이유 없이 어깨를 치면서 “길 좀 지나가자”라고 한 것도 인권침해로 분류됐다. 아울러 교사가 학생의 뒷목을 만지거나 해서 성희롱에 의한 인권침해 주장도 있었다.

◇ 교권 침해 현장

인권침해가 주로 학생들의 주장에 의존하는데 반해 교권침해의 경우 전문적인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시교육청이 교육부 지침에 따라 2013년부터 교권침해 사례를 접수해오고 있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역시 침해 사례를 접수해 왔다.

이들에 따르면 교권침해의 경우 학생, 학부모, 제3자에 의한 것으로 크게 나뉜다. 처분권자나 교직원에 의한 침해 사례도 있지만 학생과는 관계가 없어 논외로 하겠다.

울산시교육청과 울산교총 등이 접수받은 내용에 따르면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의 경우 교사의 수업진행을 학생이 고의적으로 방해하거나 교사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가해 교권침해 사례로 접수됐다. 또 여교사에 대해서는 언어나 행동에 의한 학생들의 성희롱, 심지어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는 교사가 학생에게 한 발언에 대해 학부모가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학교로 찾아와 교사를 폭행하거나 기물을 파손한 경우, 학생의 잘못에 대한 교사의 질문이나 지도 등에 대해 정서적 피해를 입었다며 고소를 하고 금전적으로 배상을 요구한 경우 등이 침해사례로 접수됐다. 또 학부모가 교사를 감시하기 위해 자녀에게 학교생활 과정 전체에 대한 녹음을 지시한 사례도 있었다.

제3자에 의한 침해는 집단 및 개인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행위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학교 및 교원에 대한 감정적인 불만을 갖게 돼 교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울산에서는 침해 사례가 드물었다.

지역 교육계 한 관계자는 “학생인권 침해의 경우 언론보도나 국민신문고를 통해서만 밖으로 드러나는 만큼 학생들이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생각해도 구두나 SNS상으로만 퍼질 뿐, 그대로 묻히는 경우가 많다”며 “그로 인해 오히려 인권침해의 기준 자체가 모호해져 교권을 더욱 위축시키는 경향이 없잖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사 교수권의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학생들에게 적극 홍보하는 게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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