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 품은 ‘울산 왜성’ 관광명소로 부활
아픈역사 품은 ‘울산 왜성’ 관광명소로 부활
  • 강귀일 기자
  • 승인 2017.11.09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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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왜성·울산왜성 종합정비계획
임진왜란 당시 서생포왜성서 사명대사·가토 협상
울산왜성전투, 왜군이 가장 고전한 정유재란 육전
중구·郡, 왜성종합정비로 역사보존·관광자원 활용
▲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축조한 서생포왜성.

서생포왜성 ·울산왜성 종합정비계획=

울산시는 올해 문화체육관광국을 문화관광체육국으로 개편하고 관광진흥과에 관광특화담당을 신설했다.그리고 올해를 ‘울산 방문의 해 ’로지정했다.시가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의 단면이다.
울산이 갖고 있는 관광자원들 가운데 일본과 관련이 깊은 유적으로는서생포왜성과 울산왜성이 있다.일본인들의 관심이 많은 곳이다.서생포왜성은 울주군에서,울산왜성은 중구에서 종합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해 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왜성의 특성과 정비계획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 1597년 정유재란 시기 축성된 울산왜성.

◇ 관광자원으로서 왜성(倭城)의 가치


왜성이란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왜군이 쌓은 성을 말한다. 전쟁초기 왜군은 평양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그러나 조선수군과 의병의 활약에 이은 명나라의 지원에 한반도 남해안 지역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장기전에 대비해 성을 쌓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왜성이 30여곳이나 된다. 울산에는 서생포왜성과 울산왜성이 있다. 울산왜성이 가장 동쪽이고 서쪽으로는 순천에도 왜성이 있다. 울산과 가까운 곳으로는 기장의 임랑포왜성과 죽성리왜성 등이 있다.

일본에서 석성(石城)은 센코쿠(戰國)시대에 본격적으로 쌓아졌다. 일본의 센코쿠시대란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사회적, 정치적 변동 및 계속되는 내란의 시기를 말한다. 오랜 내전 기간 전투경험이 축성에 반영됐다.

그러나 이 시기의 석성은 주로 기존의 토성을 보강하거나 방어상 중요한 곳에 부분적으로 축조됐다. 그 수도 많지 않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쌓은 아즈치성(安土城),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거성인 오사카성(大阪城), 임진왜란 출정기지였던 히젠나고야성(肥前名護屋城) 등이 이 시기에 축성된 성이다.

현재 일본 곳곳에 남아 있는 다이묘들의 성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 축성된 것이다. 물론 임진왜란 시기 전투경험과 왜성 축성 노하우 등이 설계에 반영됐다. 그래서 한반도의 왜성에 대해 일본인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인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 울주군 서생면 진하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서생포왜성 전경.

◇ 서생포왜성

울주군 서생면 진하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축조했다. 울산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돼 있다.

이 성은 남문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형이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어 16세기 말 일본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도 평가되고 있다.

이 성에서는 임진왜란이 소강국면에 들어선 1594년 사명대사와 가토의 평화교섭이 벌어지기도 했다.

울주군은 지난 6월 서생포왜성 종합정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군은 우선 문화재지정구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는 지정구역에 외성만 포함됐고 내성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곽 주변의 수목을 정비하고 성벽과 해자를 복원한다. 성곽의 안쪽과 바깥쪽 하단부에서 6m 이내에 있는 수목과 잡목을 제거해 성곽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외부 주차장 면적도 추가로 확보한다. 안내시설물과 방문객 편의시설도 정비한다.

군은 단계적으로 왜성 내부의 사유지들을 매입할 계획도 수립했다. 현재 성 내부에는 45가구 이상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곳은 문화재보호구역이기 때문에 개발이 제한돼 있다.
 
▲ 중구 학성동에 위치한 울산왜성의 성벽 모습.

◇ 울산왜성

울산왜성은 중구 학성동에 있다. 정유재란 시기인 1597년 가토 기요마사의 지휘로 축성됐다. 이곳에서는 두 차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과 명의 연합군은 두 차례의 공성작전을 감행했다. 그러나 성을 함락시키지는 못했다.

성 안에 고립된 왜군들도 농성전을 벌였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왜군은 결국 1598년 11월 성을 불태우고 패퇴했다.

울산왜성전투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투였지만 왜군이 이 전쟁 기간 치른 육전 가운데 가장 고전한 전투로 기록된다.

이 전투에서 울산읍민들도 의병으로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조선 조정은 전쟁이 끝난 후 울산을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중구는 2013년 ‘울산왜성 종합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현재 동문지 정비와 이에 따른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구는 이 계획에 따라 성벽수리를 포함해 6개 정비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중구는 성곽유구정비사업과 주차장과 방문자센터, 상징광장, 전망대 등의 기반시설조성사업 등을 연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강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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