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과일, 감
신이 내린 과일, 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0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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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골’ 이야기를 다룬 유행가와 ‘감나무 집’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이 많은 것은 가을철 우리 주위에 가장 흔한 과일이 감이어서 그럴 것이다. 흔하고 가까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 일쑤인 이 과일이 실은 ‘신의 음식’으로도 불린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지 싶다. ‘호랑이도 곶감이 무서워 도망간다.’거나 ‘돌팔이 의원이 감을 보면 얼굴을 찡그린다.’는 속담에서는 그 맛과 효능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진짜 술꾼은 감을 먹지 않는다.’는 말은 감이 숙취에 좋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과학적 분석을 보면, 감의 떫은맛을 내는 타닌(Tannin) 성분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뇌졸중과 동맥경화 예방에 도움이 된다. 감 속의 비타민A는 야맹증, 안구건조증 억제에 효과가 있고, 비타민C는 숙취 해소와 감기·충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 감에는 항산화 물질과 구연산이 많아 암 예방, 세포노화 방지,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의할 점도 있다. 특히 게와 함께 먹으면 식중독 위험이 있다. 또 체내의 철분과 결합하는 성질이 있어서 빈혈과 저혈압인 분들은 조심해야 한다.

감이 ‘좋은 결실’ 또는 ‘욕심’의 의미로 쓰인 속담도 있다. ‘감나무 밑에 누워도 삿갓 미사리를 대어라.’, ‘꼭지가 물러야 감이 떨어진다.’는 속담은 노력과 기다림의 가치를 일러주는 교훈이다. 감이 지금은 달고 맛있다 해도 굵기 전에는 떫은맛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익기 전의 풋과일은 맛이 없는 것처럼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러한 세상의 이치를 감(?)잡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선조들은 감나무에 문·무·충·효·절의 의미를 부여하여 높이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감잎은 넓어서 그 위에 글을 쓸 수 있으니 문(文), 단단한 나무는 화살촉으로도 쓰이니 무(武), 익은 열매는 겉과 속이 같은 붉은색이어서 충(忠), 홍시는 노인도 먹을 수 있으니 효(孝), 열매는 서리가 내려도 매달려 있어서 절개를 상징하니 절(節)이라 했고, 이 다섯 가지 덕을 두루 갖춘 감나무를 ‘오상지덕(五常之德)의 나무’라 칭송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서는 감의 칠덕(七德)을 이야기하고 있다. 감나무가 오래 살아서 수(壽), 그늘이 많아 시원해서 다음(多陰), 새가 집을 짓지 않아서 무조소(無鳥巢), 벌레가 모이지 않아서 무충양(無蟲襄), 단풍이 아름다워서 상엽만완(桑葉萬玩), 동짓날에도 먹는 생과일이어서 동지선과(冬至鮮果), 잎이 커서 글씨를 쓸 수 있어서 낙엽비대(落葉肥大)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래서 감나무를 ‘칠덕수’라 부르기도 했다.

감나무의 학명(學名)은 ‘디오스피로스(Diospyros)’다.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신인 제우스(Zeus)와 과일 및 곡물을 의미하는 피로스(Pyros)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디오스피로스는 신과 인간을 지배하는 제우스가 좋아한 과일 즉 ‘과일의 왕’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감의 잠재력이 되살아나고 있다. 생과로만 이용되던 감은 식생활의 변화와 소비자 연령층을 감안하여 다양한 제품의 형태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가을의 별미였던 홍시는 여름에도 즐길 수 있는 ‘아이스 홍시’나 ‘반 건시’, 감말랭이 등의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밖에 감식초, 감잎차, 감와인은 건강식품으로서의 가치도 높게 인정받고 있다.

가난했던 시절 교복과 작업복으로 이용되던 감물염색 의복은 천연염색 특유의 매력 덕분에 새로운 명품 의류로 변신하고 있다. 가을에 붉게 물든 단풍과 감은 향수를 자극하는 아름다운 경관 조성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주산단지를 중심으로 축제와 체험관광이 활성화되면서 농촌 관광자원으로도 그 역할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요즘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보면 감이 붉게 익어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차창으로 보이는 벽공(碧空)에 매달린 감과 감잎은 정겨운 고향같이 느껴져 반가움이 앞선다. 더구나 수확 후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한두 개의 감을 보노라면 자연과 조화롭게 살고자 했던 조상들의 넉넉한 인심이 한 폭의 동양화로 승화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 /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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