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농단(壟斷)에 서고 싶다”
“나도 농단(壟斷)에 서고 싶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0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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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가장 뜨겁게 회자된 단어는 ‘농단(壟斷)’이 아닐까 싶다. 농단은 언덕이라는 뜻의 ‘농(壟)’과 끊을 ‘단(斷)’이 합쳐진 단어다. 그 어원은 맹자에 나오는데, 옛날 시장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의 것과 맞바꾸는 장소였다. 한 못된 사나이가 반드시 높은 언덕(농단)에 올라가 좌우를 살핀 다음 시장의 이익을 싹쓸이한 데서 유래했다. 결국 농단은 홀로 우뚝한 곳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이익과 권력을 독차지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기준으로는 잘못된 것이지만 현대경제 원리로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농단을 꺼낸 이유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이 딱해서다. 경제 논리로 보면 농단을 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이 대부분 기업들의 바람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정부에서는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 등 허울 좋은 구호를 내걸지만, 여러 불합리한 제도와 실천 의지의 부재로 중소기업의 피부에는 전혀 와 닿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기대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연명해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십여 년 전 우리 회사도 “농단에 서겠다”는 불타는 의지로 지하매설 배관에 대한 부식 관리를 무선 원격으로 감시하고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유선으로 하는 기술은 독일에도 있었지만 국내의 앞선 ICT 기술을 접목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이미 독일에서 널리 쓰이는 기술보다 한발 더 앞선 기술을 개발했으니 곧 농단에 설 것만 같았다. 그런데 초기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첫 시련은 국내 국책연구소였다. 그 연구소는 아무런 실제 기술도 없으면서 두루뭉술하게 “관련 특허를 등록해 놓았다”며 당사 매출의 3%를 기술료로 징수해 가는 것이 아닌가.

두 번째 시련은 공기업이었다. 매설 배관을 수천 km씩 가지고 있어서 거기서 우리 기술과 제품을 채택만 해주면 농단에 설 수 있는데, 특허만 가지고는 수의계약이 안 되니 신제품(NEP) 인증을 획득해 오라는 주문이었다. 또 열심히 노력하여 신제품 인증을 획득했더니, 이번에는 사내 표준을 개정해야 우리 기술과 제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업에 무려 3년이 걸리는 동안 인증 시효가 만료되었고, 후발 카피업체들과 입찰로 경쟁하는 처지로 전락하여 부풀었던 농단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지금 겪고 있는 세 번째 시련의 주인공은 정부다. 무선 시스템은 해킹 등 보안에 취약하니 모두 철거하란다. 지금 세계는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서로 이 분야의 “농단에 서겠다”고 전쟁 중인데, 우리나라만 멍청하게도 보안을 이유로 유선 시대로 회귀해야 한단다. 이런 엇박자가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강소기업을 못 키우는 가장 큰 요인이다.

선진 시스템을 경험하러 독일에 한 달간 체류한 적이 있었다. 이때 “독일은 경제적 손실이 없는 나라구나”라고 절실히 느꼈다. 너무 부러웠다. 가스 회사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전체적인 관리만 하고, 자회사인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유지관리를 총괄하고 있었다. 배관에 문제가 발생하면 모니터에 상황이 즉시 나타나고, 해당 중소기업으로 전송되어 바로 조치하게끔 모든 시스템이 스마트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관련된 모든 회사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즉각 돌아가고 있었다.

방문한 스마트장비 회사는 가족회사였다. 아버지가 생산 및 총괄사장, 어머니가 회계, 아들은 신기술 개발 담당이다. 가족회사임에도 기술력이 뛰어나서 세계 수십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었다. 방문한 또 다른 설비 회사에서 벽에 걸린 요트 사진을 보고 더 놀랐다. 하계휴가 때 전 직원이 요트를 타고 함부르크항을 출발하여 지중해 연안을 항해하고 왔단다. 훗날 직원들하고 “1년에 한 번씩 꼭 해외여행을 다녀야지” 다짐했는데 아직 한 번도 못 갔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농단에 서서 웃으며 그 약속을 지킬 날이 오리라 오늘도 다짐한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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