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도서관 (2)
원더풀! 도서관 (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0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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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중앙도서관 건너편에 색다른 미국 USIS 공보도서관도 있었다. 우리네 도서관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서양풍의 인테리어여서 요즘의 우아한 카페 분위기와 엇비슷했다. 미국인들만이 앉을 수 있는 키 높은 걸상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고교생인 나는 관내의 서가를 여기저기 기웃하면서 이방인처럼 두리번거리기 일쑤였다.

집 근방에는 또 조그마한 경찰학교 도서관이 있었다. 경찰교육생들이 이용하는 좀 특이한 공공도서관이다. 그러나 교육생들은 별로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일반시민들이 이용했다. 책을 대출해서 읽는 곳이라기보다 자기 책으로 공부하는 독서실 같은 곳이었다. 이것 또한 나로서는 좋은 조건의 공부방이 아닐 수 없다. 동네 또래들과 같이 그저 놀러 다니는 쉼터 겸 쑥덕공론장이 되기도 했다.

대학은 운 좋게 서울로 올라갔다. 당시 서울에 있는 도서관 수(數)는 지금보다 적었지만 그래도 국립, 시립, 사립 등 다양했다. 대학도서관, 국립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남산도서관, 정독도서관 등 굵직굵직한 도서관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2명이 같이 쓰는 하숙방 신세라 대학생활도 대부분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학교 도서관보다 오히려 바로 옆에 위치한 K대학 도서관으로 자주 갔었다. 든든한 재단의 대학이라 도서관의 메인 홀은 마치 화려한 유럽 궁전 못지않았다. 다행히 타교생한테도 아무런 제재 없이 출입할 수 있었던 그야말로 ‘열린’ 도서관이었다.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다닐 때에는 한군데 더 늘렸다. 도심 중앙에 위치한 일본대사관 소속의 광보도서관이다. 일본의 홍보책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최신 서적을 열람할 수 있는데 여러 겹의 서가에는 일본 원서들만 쭉 꽂혀있었다.

이용자들은 대부분 일본어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어를 익힌 연세 많은 우리네 노인들이 대부분으로 일본의 일간신문을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흡족한 모습들이어서 보기 좋았다. 하지만 가끔 신문을 보다가도 졸리면 엎드려 그대로 주무시거나 코를 골면서 자는 노인도 있었다. 잠이 오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건 좀 약과다. 손톱을 깎고 있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활기 있게 가까이에 있는 파고다공원에 나가 할아버지들의 야외토론장에나 나가 논쟁을 벌이거나 시내 속으로 들어가 세상 구경하는 것은 아예 하지 않는 듯하였다. 기력이 약한 탓이라 이곳에서 편히 신문 보고 낮잠 자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할 듯 보였다.

공립도서관이란 지방자치단체가 설치, 운영하는 도서관으로 도립, 시립, 군립, 읍립, 면립 도서관들이 이에 해당한다. 사립도서관은 민법 규정에 의한 법인이 설치한 도서관을 말한다. 웬만한 도시에는 이젠 시, 구마다 동네도서관이 다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성화된 도서관도 있다. 예술, 문학, 아동교육, 꽃 등 다양하다.

지독한 공부벌레이자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U. Eco, 1932~2016)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난쟁이들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세요. 난쟁이지만 거인(巨人)의 무등을 탄 난쟁이랍니다.”

인류 한 명 한 명은 미약하고 작은 존재이지만 결코 작지 않다. 긴 시간 인류가 축적해 놓은 ‘힘과 에너지’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 그 힘과 에너지가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 아닌가! ‘세상이 멸망해도, 1억 8천만권의 어마어마한 책이 있는 미국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Washinton, D.C.)만 건재하다고 한다면, 인류문명을 재건하는 건 시간문제다’라는 말. 이런 대단한 경구도 있을 정도니 도서관은 정말 환상적이고 놀랍지 않은가!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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