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야 할 때 자르지 않으면…”
“잘라야 할 때 자르지 않으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0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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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이 코앞인 탓일까, 요즘 중앙정가의 말발들이 서릿발처럼 날카롭다. ‘바퀴벌레’란 말에 ‘슬금슬금’ ‘기어 다닌다’는 말이 뒤를 잇고, ‘몸부림친다’는 말에 ‘머리 풀고 석고대죄 하라’는 말이 꼬리를 문다. “트럼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서슬 퍼런 말씀의 주인공은 단연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대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다. 홍 대표가 거머쥔 촌철(寸鐵) 앞에선 박근혜 직전 대통령도 ‘정치적 타살’의 희생양에 지나지 않았고,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서청원 8선 의원과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바퀴벌레’ 말 한 마디에 추풍낙엽 일보직전이다.

어쩌다 이 지경인가? 굳이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 ‘이 지경’에 대한 분석은 이번 글이 노리는 목표가 아닌 탓이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정치적 수사’ 몇 마디에 대한 가벼운 고찰로 끝낼 참이다. 촌철살인의 정치적 수사 중엔 홍준표 대표의 “당단부단이면 반수기란이라”(當斷不斷, 反受基亂)는 말이 단연 압권이다. 중국 한(漢)무제 시대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춘신군전(春申君傳)’에 나오는 고사로, 홍 대표가 ‘제1호 당원’ 박 전 대통령 제명을 앞두고 작심 끝에 끄집어낸 명언이기도 하다. “마땅히 잘라야 할 때 자르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부른다” 혹은 “결단을 내릴 때 주저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춘신군’은 옛 전국시대 초(楚)나라 재상으로 통치자나 다름없는 실세였다.

‘당단부단, 반수기란’은 홍 대표가 5년 전(2012년) 2월 1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 때도 인용한 고사(古事)다. 당시 기록은, “한미FTA 국회 비준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 무렵 홍 대표가 본회의 출석을 집단 거부한 민주당을 향해 던진 쓴 소리였다”고 전한다. 홍 대표는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민주당은 의회민주주의의 틀 속으로 돌아오기 바란다”는 말을 던졌다. 결단을 내려 한미FTA를 강행처리하겠다는 선언이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 고사가 홍 대표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떤 기록은 2015년 1월 13일,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이재오 의원이 내뱉은 말이었다고 전한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인적쇄신’ 요구를 거부하자 이 의원이 자신의 SNS를 통해 “박 대통령이 화를 당할 것”이라며 쓴 소리를 하면서 ‘당단부단, 반수기란’이란 말을 인용했다는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친이(=親 이명박)의 좌장’이었던 이재오 전 의원에겐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예언(?)의 적중도가 매우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넷 필명이 ‘하림’이란 필자는 최근 이재오 전 의원의 SNS 발언 내용을 전하면서 “이 말(‘당단부단, 반수기란’)을 예언적으로 했다가 현실이 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문고리 3인방’을 두고 한 예언이 2년 10개월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되고 말았다는 얘기였다. 부분적으로 인용해 보자. “(이재오 의원이 SNS에 쓴 소리 올리기 전날인) 2015년 1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을 묵살하면서 ‘의혹을 받았다는 이유로 내치거나 그만두게 한다면 누가 제 옆에서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다.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 때의 인적쇄신 요구를 무시한 결과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영상매체 MBN의 김수형 기자는 4일 저녁 ‘홍준표-서청원의 인연·악연’을 다룬 ‘뉴스 추적’ 앵커멘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 적이 되고, 반대로 오늘의 적이 내일 동지가 되는 곳이 바로 정치권인데, 앞으로 지방선거 전까지 국민들은 이런 정치권 모습을 자주 볼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진다. 정치는 ‘생물’이자 ‘배반의 예술’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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