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칼럼]처용, 울산의 희망을 부르다
[이정호칼럼]처용, 울산의 희망을 부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0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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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처용문화제’가 끝난 지 제법 지났다. 이 문화제는 1967년부터 시작된 울산공업축제를 모태로 한다. 당시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공을 기념하고, 이어지는 개발계획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6,70년대 무렵의 ‘울산공업축제’는 말 그대로 시민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볼거리가 귀하던 시절인지라 학생들은 단체마스게임에 동원되었고, 수많은 시민들은 공설운동장으로 운집했다. 고등학교 악대부들은 행진의 선두에 서서 행렬을 선도했고, 기업체마다 상징성 있는 조형물을 앞세우고 시가지 행진에 동참했다.

‘울산공업축제’라는 명칭은 24회로 끝나고 1991년부터 ‘처용문화제’로 바뀌었다. 요즘은 언제인가부터 온갖 축제가 난립하면서 축제에 대한 호기심이 집중되지 못하기 때문에 ‘처용문화제’도 다수 시민들의 관심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때는 ‘처용문화제’라는 바뀐 명칭 때문에 찬반의 입장이 맞서면서 깊은 갈등을 빚어낸 적이 있다. 아마도 설화문학을 역사적 사실로 비약시켜 외설로 몰아간 탓이었을 것이다. 올해에는 새로 발족한 울산문화재단이 주관했는데, 처용의 정체성과 역사성에 충실한 기획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

올 행사는 ‘처용, 울산의 희망을 부르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웠다. 울산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을 공연이나 행사 진행 과정에서 담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한편 학술심포지엄의 주제는 ‘울산의 고유 문화자산으로 처용의 발견’이었다. 마침 농소면 고향 선배인 김경수 교수가 발표자여서 귀를 쫑긋하면서 집중해서 들었다. 처용은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그동안 학계에서는 처용 연구가 오랫동안 깊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전해오는 무수한 설화 중에 처용설화만큼 널리 회자되고 연구된 것이 없다’는 말이 무척 반가웠다.

발표자는 12년 전에 발간한 <처용연구전집> 간행위원장이었다. 이 <처용연구전집>은 권당 700쪽(7권)으로 된 방대한 분량이다. 대현면 출신 고 주영돈의 1억 원 출연으로 전집이 발간되었다. 전집에는 그동안 발표된 350여 편의 논문 중 학술적 가치가 있는 180여 편의 논문이 문학, 설화, 민속, 어학, 역사, 종합, 예능으로 각각 분류돼 수록되어 있다. 한국의 대표적 설화 중 하나인 ‘처용설화’에 대한 연구 결과를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한다. 그래서 울산의 대표 문화제 이름에 처용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처용가>와 그 설화는 《삼국유사》에 ‘처용랑 망해사’라는 제목으로 실려 전한다. 전체 520여자의 한문 글인데, 이 중 <처용가>는 61자의 향찰로 기록되어 있는 향가이다. 향찰은 한자의 음과 훈을 이용하여 우리 말소리를 표기한 글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서가 아니라 유사에 나오는 기록이다. 설화의 배경이 된 처용암과 망해사는 지금도 울산에 실재한다. 그래서 토론자 김학성 교수는 <처용가>와 그 설화는 내용으로 보아 역사성, 민속성, 신성성, 초월성, 예능성 등 다중 요소들이 융합되어 있어서 논란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문제는 <처용가>의 내용을 두고 분분했던 과거사이다. 그 핵심이 향가의 표현 방법 면에서 흔히들 말하는 메타포, 즉 은유법의 적절성 여부인 것 같다. 어디까지나 비유적 표현인 것을 자구대로 해석해버린 탓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처용을 최고 경지의 탈속자로 그리다보니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설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밤들이 노니다가’라는 표현은 그 주체가 처용인데, 발표자는 이를 놀러 다니는 것으로 해석하기보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기 위한 수련 과정일 것으로 해석한다.

사실 우리는 처용무에 더 주목해야 한다. 헌강왕의 눈에만 보인 처용무가 용왕의 진노를 풀어주었고, 간통한 역신이 처용의 춤을 보고는 그 인품에 감동하여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 후 부정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처용의 얼굴을 그려서 집 앞에 붙인 것에서 부적이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낼 때 사람들은 감동한다. 처용도 석탈해나 허황후 같은 추앙받는 인물처럼 바다를 통해 들어온 도래인일 가능성이 높다. 처용은 이처럼 모든 인물상의 좋은 점을 가진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가공했을지도 모른다.

처용의 모습을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설화의 내용에서 헌강왕의 이야기 비중이 가장 높고, 마지막 단락은 중 일연의 입장이 나타나 있다. 글의 흐름 속에 처용은 두려움과 존경심을 동시에 주는 인물로 읽혀진다. 그렇다고 처용이 울산 출신 인물이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울산은 처용을 정신문화 자산으로 설정하고 용서와 관용, 그리고 화합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이는 처용설화가 먼 옛날로부터 전해준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낸 결과이다. 처용이 가졌던 무념의 마음, 물아일체의 마음이 울산의 희망을 불러오기를 기원한다.

이정호 수필가,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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