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조 칼럼] 외로움과 마음의 감기
[김부조 칼럼] 외로움과 마음의 감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0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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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거듭할수록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고향을 떠나 오랜 타향살이에 지친 사람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고 쓸쓸히 빈집을 지키는 기러기 아빠, 애지중지 기른 딸을 출가시키고 허전함에 밤잠을 설치는 아버지, 이혼 혹은 사별의 아픔을 겪고 낯선 홀로서기에 적응하느라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물론, 평범한 일상 속에 묻혀 지내는 대다수 사람들도 까닭 없는 이 ‘외로움’이란 세 글자를 가슴에 새긴 채 살아가고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외로움’을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로체스터대 심리학 교수 해리 라이스는 ‘대개 심한 외로움은 곁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느낀다’고 말한다. 이른바 ‘군중 속의 고독’이란 얘기다.

성별을 불문하고 성인의 사회적 고립감은 수면 장애, 고혈압, 우울증과 자살의 위험 증가 등 신체적·정신적 질병으로 이어지며, 현재 얼마나 외로우냐가 그날 밤의 숙면 여부만이 아니라 1년 뒤의 우울증까지 예측해 준다고 한다. 또한 외로움은 스트레스를 높이고 면역체계를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외로울수록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미국 듀크대 연구팀이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외로움’이 ‘우울증’을 낳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놓고 볼 때, ‘사회적 고립감’을 탈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절실히 느끼게 된다.

영국 격언에 ‘하루에 한 번 우울해지지 않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 격언대로라면 우리는 우울한 감정을 늘 지니고 산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는 우울증을, ‘기분 저하, 의욕과 흥미 상실, 죄의식, 무가치감, 수면장애, 식욕장애, 집중력 저하, 에너지 저하를 보이며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주는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우울증’은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을 느끼거나 단순히 마음이 나약해지는 ‘우울한 감정’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도 하는 우울증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특히 일조량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환절기, 즉 가을부터 자주 발생하므로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나이, 인종, 지위, 성별을 떠나 누구에게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방치하면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질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세계보건기구는 ‘2020년에 이르면 우울증이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는 질환 중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았다.

우울증과 관련이 있는 호르몬은 세로토닌이다. 이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뇌 속 물질로,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신경계가 불균형하고 감정이 불안해진다. 세로토닌을 행복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는 마음의 상처 때문으로 생각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호르몬 분비의 변화로 일어나는 멜라토닌 분비의 증가와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의 감소가 꼽힌다.

깊어가는 가을. 갈수록 일조량이 떨어지면서 ‘계절성 우울증’도 서서히 고개를 든다고 하니 이 독감 바이러스(?)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요령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우울증’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에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 담담한 마음으로 한 편의 시를 읊조리며, ‘마음의 감기’를 물리치는 지혜를 발휘해야겠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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