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산실 ‘성남동 울사협’을 회상하며
노동운동의 산실 ‘성남동 울사협’을 회상하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01 19: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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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을 ‘한국 노동운동의 메카’라고 한다. 그 중심에 섰던 ‘민노총’의 산실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이하 ‘울사협’)의 사무실이 중구 성남동 196번지 3층 건물 즉 필자가 운영하던 현대외국어학원 건물로 들어온 것은 1989년의 일이었고,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건물은 나중에 4층 조립식으로 증축되었다. 초기 ‘울사협’의 주축은 형제교회 비롯해 천주교, 예장(예수교장로회), 성공회, 기장(기독교장로회), 구세군 등 여러 종파들이 한데 어울린  기독교 단체들이었다.


군부독재 시절인지라 이름은 ‘기독교 선교’라는 보호색을 띠어야만 했다. 당시 NCC(=진보 성향의 ‘기독교교회협의회’)는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총본부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불신자들까지도 뜻을 같이하는 동지라면 NCC 속으로 속속 들어왔다. ‘울사협’은 전재식, 손덕만 신부를 중심으로 가톨릭, 성공회, 개신교 등 신·구교가 손을 맞잡은 가운데 서서히 조직을 갖추어 갔다. 울산성당 손덕만 신부와 대현교회 윤웅오 목사가 공동의장을, 전재식 신부가 사무국장을 맡았다. 곧 이어 부설 ‘노동문제상담소’가 만들어지고 장태원 선생이 상담소장, ‘전교조의 씨앗’이 된 노옥희 씨가 간사를 맡으면서 사회운동단체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박종희 씨가 내려와 사무국장을 맡았을 때는 성남동 ‘울사협’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던 시기였다.


이 무렵 노동자의 기본생존권 투쟁(1987년 6월 항쟁)이 불붙기 시작하면서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노동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노사가 극한대치로 맞선 가운데 한때 그 본부가 되기도 했던 이 단체는 딴 곳에다 사무실을 얻기가 참으로 난감했고, 오갈 데 없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사무실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테러가 일어났고, 전경들은 건물을 장기간 포위하며 출입자를 통제하는 시기가 계속 이어졌다. 관할 경찰서장은 건물주인 필자에게 그들을 당장 내보내라고 했으나 듣지 않자 나중에는 돈을 줄 터이니 쫓아내라고 회유와 압력을 거듭하기가 여러 번이었다. 필자는 임대인의 의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분들이 계약기한 3년을 다 채우고도 스스로 나갈 때까지 보호해주려고 애썼다.


이 와중에 결국 학원을 다니던 학생들까지 감시를 받으며 출입이 통제되자, 학원은 서서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이후 민주화 투쟁이 승리로 기록되면서 ‘울사협’에 같이 참여했던 노동자, 전교조 교사, 대학생들 모두가 민주노총 탄생과 함께 빛을 보게 되었다. 사무실 또한 더 많은 돈을 주고 ‘신도시’ 남구 같은 곳의 크고 멋진 건물로 이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분들은 지금도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낡고 비좁은 건물(지은 지 9년 된 철근콘크리트 건물)에서 견디느라 참 고생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어서 서글픈 격세지감 같은 것을 느끼게도 된다.


또 이분들 중에는 민노총의 막강한 조직력으로 정계로도 진출한 끝에 구청장, 국회의원, 교육의원, 시의원 등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하나 그 시절 어려운 처지에 놓였던 그들에게 활동 공간을 제공하며 고통을 참아 온 건물주의 인내와 고충을 기억하거나 감사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많다.


전교조 소속 어떤 여성분은 그 와중에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고, 울산대학교 결혼식장까지 찾아가 축하해준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후일 교육위원이 되고 야당의 선출직 후보가 되기도 했지만 끝내 감사의 말이나 도움은커녕 정치적 길목에서 어설프게 마주치게 되는 방해꾼의 인상만 남아있을 뿐이다. 당시 ‘울사협’이 떠난 후 건물 옥상 물탱크에 가득 차 있던 화염병과 건물 뒤편에 버려진 1톤 트럭 3대 분량의 쓰레기를 필자 홀로 치우느라 진땀을 빼던 일이 지금 와서 새삼 되살아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래도 단 한 사람, 천리행군을 결행했던 이상범 전 현대차 노조위원장 겸 북구청장만이 후일 “그 건물을 민노총 산실의 기념관으로 영구보존 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현대그룹 노동자들의 기본생존권 쟁취를 위한 결사투쟁 의지와 민주화의 열기가 불타오르고 그에 대등한 공권력의 탄압 또한 극에 달했을 때 이곳 역사의 현장을 속속 찾아 격려해주던 당시 야당 인사들이 많았다. 그들 중엔 후일 대통령이 된 노무현·문재인 변호사, 그리고 김광일 변호사, 최영근 국회의원 등 전·현직 정계의 거물들도 있었다. 한동안 한국 노동운동의 산실이자 메카나 다름없었던 중구 성남동 울사협 시대의 역사가 쉬 잊혀지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이철수 울산사회교육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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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 2017-11-02 11:36:14
역시 탁원한 문장력은 과히 울산에 유일한 언론인 어른, 문사로서 그 이름을 남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