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도서관 (1)
원더풀! 도서관 (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0.3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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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내가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앞집 옆집 가릴 것 없이 대부분 10여명 가족이었다. 우리 집도 그 중 하나로 집안 식구가 15명이나 북적댔다. 보설하면 조부모, 부모, 누나 1명, 형 2명, 동생 2명, 식모 1명, 머슴 1명, 대문간 집 3명이었다. 그 속에 사는 ‘학생(學生)’이 집에서 가만히 앉아 공부한다는 것은 어려운 분위기였다.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면 도서관 이외 다른 곳이란 없었다. 운 좋게도 내가 사는 곳은 대도시라 도서관을 찾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잠깐 어린 중학생 때로 거슬러가 본다. 수업이 파하면 곧장 도서관으로 가기 바빴다. 그냥 맹목적으로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다. 굳이 공부하겠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었다. 시끄러운 곳을 벗어나 잠시 차분한 곳에 가 있으면 마음도 좀 편할 것 같아서였다. 학교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교내의 모든 건물이 검붉은 벽돌로 되어 있어 매우 신기하게 보였다. 가톨릭재단의 학교는 대부분 그런 분위기로 주위에 비슷비슷한 건물이 몇 개 더 있었던 것 같다.

갓 입학한 다음 날 나는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대출증을 발급받아 소설 한 권을 빌렸다. 서명은 1889년 프랑스 소설가 쥘베른(Jules Verne, 1829-1905)이 지은 ‘15소년 표류기’였다. 15명의 또래 녀석들이 등장하는 모험소설이어서 중학 1년생은 정말 호기심이 가득 찼다. 어린 꼬마가 처음으로 읽어보는 외국 모험소설이라 내내 흥미진진하여 시간가는 줄 몰랐다.

공교롭게도 음악과목 교실은 이 도서관 건물 제일 안쪽에 있었다. 시설도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훌륭한 LP판 축음기에다 방음장치도 제법 잘 되어 있었고 걸상도 일반교실 것보다 좀 소프트했다.

오늘 음악시간에는 선생님께서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고 무슨 곡인지 알아맞혀 보라 하신다. 나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문제. 지난 6년 동안 초등학교 때에 배운 음악이라야 기껏 동요나 외국민요 몇 곡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클래식 음악의 곡명을 맞출 리 없었다. 근데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친구가 용감하게 일어서서 대답했다. “선생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요!”라고…. 모두들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이런 어려운 음악을 그 친구가 알 수 있을까. 분명 이건 음악과 관련 있는 집안의 아이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 후 난 그를 볼 때마다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구내에 도서관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있어도 조촐한 자습실 같은 곳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시내 중심지에 있는 시립중앙도서관으로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평일에도 갔었지만 방학 때는 아주 그곳에서 생활한 듯하다. 겨울방학 때는 참 재미났다. 열람실 한가운데에 기역자 모양의 양철 연통이 길게 연결된 대형 난로 하나가 있었다. 그 위에는 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큰 주전자가 있었고 가끔 물이 넘치는 소리가 칙칙하면서 났다. 그 소리를 들으면 왠지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이 공부가 더 잘 되었던 것 같다.

정확히 오전 11시가 되면 난로 위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일찌감치 양은(洋銀) 도시락을 하나씩 올려놓는 일이다. 추운 겨울철 차가운 도시락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난로에서는 김치 특유의 짠 냄새 그리고 구수한 누룽지 냄새, 쿰쿰한 단무지 냄새 등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냄새까지 났다. 수사적으로 표현하자면 인생의 냄새, 삶의 냄새가 발산하고 있는 것이었다.

열람실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고시준비생 같았다. 감히 잡담은 엄두도 못 내었다. 잡담을 하다간 쫓겨나기 일쑤였다. 고요한 사찰의 대웅전에 앉아있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다음 ‘원더풀! 도서관(2)’에 계속>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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