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공들과의 공존 ‘리브 투게더’
견공들과의 공존 ‘리브 투게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0.2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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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두사 ‘개-’가 들어가는 낱말치고 좋은 느낌의 낱말은 별로 없다. 국어학을 전공한 방송인 정재환 씨가 만능접두사 ‘개-’의 쓰임새 세 가지를 자신의 블로그 ‘한글나라’에 올린 적이 있다. ‘개-’로 시작되는 말 가운데 긍정적 의미를 지닌 낱말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

‘개-’의 쓰임새는 △첫째,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더한다. △둘째, 일부 명사 앞에 붙어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더한다. △셋째, 부정적 뜻을 갖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한다. 첫째의 보기로 ‘개꿀, 개떡, 개살구, 개철쭉’이 있고 둘째의 보기로 ‘개꿈, 개나발, 개수작, 개죽음’이 있고 셋째의 보기로 ‘개망나니, 개잡놈’이 있다.

명사 ‘개(犬)’도 그다지 존중받을 만한 주체는 못 된다. 옛날 속담들이 좋은 본보기다. ‘명주 자루에 개똥’, ‘복날 개 패듯 한다’, ‘풀 쑤어 개 좋은 일 한다’, ‘오뉴월 개 팔자’ 혹은 ‘개 팔자가 상팔자’, ‘성균관 개가 맹자 왈 한다’, ‘개 용상(龍床)에 앉은 격’, ‘개에게 호패(號牌)’, ‘개 보름 쇠듯’,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 꼬리 삼년 두어도 황모(黃毛=족제비의 꼬리털) 못 된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 등등 무수히 많다.

그렇다고 함부로 썼다간 큰 코 다친다. 입맛 당기는 표현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비난의 화살을 피해 갈 수 있다. 신분상승을 거듭한 견공(犬公)들의 위상이 엄청나게 달라진 탓이다. ‘가지고 노는’이란 뜻이 담긴 ‘애완견(愛玩犬)’은 한물간 지칭이고 ‘평생을 함께하는’이란 뜻이 담긴 ‘반려견(伴侶犬)’으로 호칭해야 별 탈이 없다.

요즘 와선 반려견 키우는 사람을 ‘반려인’, 키우지 않는 사람을 ‘비반려인’이라고도 부른다. 이 말에 심사가 뒤틀린다는 어떤 분은 “문자 그대로 개 팔자 상팔자”라고 자조 섞어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정이 또 뒤바뀌기 시작했다. 서울의 유명한식당 ‘한일관’ 여주인이 이웃 유명연예인 집 맹견한테 물려 숨진 사고가 판을 결정적으로 바꿨다. “사나운 개 콧등 아물 날 없다더니, 기어이 큰일을 냈군”이란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견주(犬主)의 주의·보호 의무와 처벌 수위를 더 세게 해야 한다”거나 “개 키우려면 ‘페티켓’(petiquette=pet+etiquette, 반려동물 에티켓)부터 지키라”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반려견 입마개와 목줄이 불티나게 팔리고 이웅종·강형욱 씨 같은 ‘반려견행동전문가’들이 특수를 누리기 시작한 것도, ‘개 물림 참사’ 직후에 나타난 흥미로운 현상이다.

최근엔 ‘리브 투게더’(live together)라는 이색 캠페인이 온라인과 전파를 누비기 시작했다. 반려견 주인들이 페티켓을 먼저 실천해 보이면서 공생(共生)의 문화를 뿌리 내리게 하자는 취지로, 인터넷에서 시작됐다. YTN은 28일자 뉴스에서 반려견주들의 ‘페티켓 지키기’ 캠페인을 시작한 이경원 씨(경기도 남양주씨 수동면) 얘기를 소개했다. “‘리브 투게더’ 캠페인은 보호자가 반려견과 함께 페티켓 지키는 모습을 SNS에 올리고 ‘리브 투게더’ ‘공생문화정책’ 같은 해시태그(Hashtag=샤프 기호 ‘#’와 특정 단어를 붙여 쓴 것)를 붙이는 방식으로, 시작한 지 사흘 만에 200여 명이 동참에 나섰다”는 말도 덧붙였다. 캐나다에서 시작돼 40여 개 나라로 번져 간 ‘노란 리본 달아주기’ 캠페인도 같이 소개했다. ‘노란 리본’이나 ‘노란 목줄’을 한 개는 ‘예민한 상태이니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의 뜻이라고 했다.

건강·의료 포털 사이트 ‘코메디닷컴’ 인용에 따르면 지난해 동물에게 물리는 사고의 88.2%가 개 때문에 발생했다(고양이 10.0%). 또 개가 사람을 물지 않게 하려면 어릴 때부터 철저한 교육·훈련을 받게 해야 하고, 견주의 꾸준한 관리 역시 중요하다. 견공들과의 공생 캠페인인 ‘리브 투게더’ 역시 이 점을 강조하는 면에선 전혀 다를 바 없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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