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합시다
함께 합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0.26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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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걸음을 뗀다. 제과점을 지나고, 초등학교 교문을 지나고, 편의점에 다다르면 저만큼 앞에 우뚝 선 아파트 몇 동이 보인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기 전, 몇 개의 건널목을 지나야 한다. 마지막 건널목, 함께 초록 신호를 기다리는 건너편 사람들을 본다. 그녀는 나보다 몸피가 작다. 찰랑거리는 머리칼은 어깨에 닿는 정도, 목에 두른 스카프 자락은 가슴께에 머물러 있다. 반가운 이와 통화라도 하는지, 핸드폰을 쥔 그녀의 얼굴이 환하다. 초록불이다. 건널목 중간쯤에서 그녀와 스치는 동안 다시 한 번 그녀의 가냘픈 팔뚝을 본다. 날씬한 허리를 힐끗 살핀다. 그녀와 나는 갈 길이 반대, 그녀의 웃음소리가 허공을 맴돌다 잦아든다.

“그래, 오늘도 꼭.”

지난 결심을 옥조이며 중얼거린다. 걸음걸이를 빨리하며 걷는다. 단지로 접어들어 주홍빛 보도블록을 밟으며 계속 걷는다. 경비 초소에는 아무도 없는 눈치, 쉬는 시간인지 순찰을 하는 시간 둘 중의 하나일 게다. 웃음기 띤 경비 아저씨의 얼굴이 궁금할 즈음, 어느덧 중앙현관에 다다른다. 엘리베이터 위의 숫자가 보인다. 아뿔싸, 1이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췄다는 뜻. 그냥 타고 갈까, 그렇지만 나는 이내 숨을 깊게 고른 후 오른쪽으로 몸을 튼다.

내가 그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몇 달 전이다. 우연히 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그 일에 대해 들었다. 흥미를 끈 것은 물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는 말에 기회가 생길 때마다 꼭 해야지 결심했다. 쉽고 간편하고 도구도 필요하지 않고 더군다나 돈도 들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차근차근 회수와 강도를 높이는 게 가능하니 그다지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그 일은 바로 계단 삼층까지 오르기.

아는 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던 날, 처음으로 그 일을 했다. 평소에도 가끔 하는 일이라 계단 오르기는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평상시에도 가끔 마음이 내킬 때마다 혹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릴 때 계단을 이용했다. 또한, 올라갈 층의 한계와 횟수를 정하지 않고 올랐는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삼 층까지 계단으로 걷더라도 충분하다니 지속해서 실천 가능한 운동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걸어본 경험으로 봐도 삼층은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들에게도 딱 좋은 층수였다.

삼층까지 계단 오르기는 어렵지 않았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 어김없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 손잡이를 벗 삼아 걸었다. 모든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삼층에 설치된다면 삼 층까지 계단 오르기는 모든 이가 당연히 지키는 원칙이 될 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삼층까지 오를 게 아니라 더 높은 층까지 올라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삼월에는 삼층, 사월에는 사층 이런 식으로 더하면 힘들지도 않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월부터 시작된 계단 오르기는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다. 그동안 가끔 꾀가 나기도 했지만, 꾹 참고 실천 중이다. 외출이 잦으면 잦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무조건 집을 나왔다가 들어갈 때면 계단 오르기를 지켰다. 욕심 부리지 않고 그달에 맞는 층수만큼 계단을 오르고 이후엔 엘리베이터를 탄다.

가장 힘들었던 달은 역시 한 여름인 7월과 8월, 땀을 흘리며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는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시원한 수영장이나 헬스장에 등록할까, 이런다고 체력이 좋아질까, 다리가 튼튼해질까,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엘리베이터와 딱 만날 때가 생긴다. 그때가 가장 유혹에 시달리는 지점이다. 꾹 참고 한 걸음 한걸음 떼다 보면 어느새 목표한 층. 어느덧 시월, 처음에는 오층쯤 오면 약간 숨이 찼는데 지금은 구 층 정도 닿아야 숨이 차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몇 차례 하지 않았는데 단련이 되긴 되었나 보다.

“엄마, 12월에는, 아니 1월에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언젠가 식구들과 함께 외출하고 돌아오던 날, 어김없이 계단으로 가는 내게 아이가 물었다. 생각지도 않은 질문이다.

“그때는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야겠다, 그치?”

대답하며 웃는다. 참고로 우리 집은 12층보다 낮다.

엘리베이터를 외면하고 오른쪽으로 걸음을 뗀다. 계단의 신주가 반짝인다. 누군가의 수고가 만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빙긋 웃는다. 층과 층 사이에 자리 잡은 창문으로 넉넉한 햇살이 들어온다. 계단참을 지나 몇 걸음 오르면 노란 표지판이 눈에 띈다. 애완견이 계단에 실례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의 표지판이다. 한 층 한 층 높아질 때마다 창문으로 보는 풍경과 현관의 풍경이 다르다. 현관문에 붙은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라는 글귀를 보며 집주인의 연륜을 짐작한다. 계단 옆에 놓인 작은 킥보드는 주인의 앙증맞은 발을 기다리는 듯 다소곳하다. 우리의 이웃 누구는 우유를 배달해서 먹는지 현관문 손잡이에 주머니가 걸렸다. 가끔은 재활용품을 내놓은 집도 있다. 통행을 거스르지는 않지만, 안전상 피해야 할 일이라고 귀띔해주고픈 마음도 든다. 몇 순배의 계단참을 돌고, 손잡이를 의지해 오르고 오른다. 차오르는 숨을 고르고 현관문의 버튼을 누른다. 머리 위에서 센서 등이 나를 격려하듯 불을 밝힌다. 핀 조명이라도 받은 듯 내 이마가 불빛에 반짝인다.

“함께 하시렵니까? 우리 계단에서 꼭 만납시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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