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예술제에서 만난 사람들 下
한글문화예술제에서 만난 사람들 下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0.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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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울산 중구 문화의 거리 ‘가다 갤러리’에서 ‘한글을 가슴에 품고’ 열린 전국학술대회 <인류 최고 문화재 ‘훈민정음’ 해례본 다시보다>는 열띤 분위기 속에서 강연과 질문, 답변이 이어졌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설명한 고서 ‘훈민정음 해례본’ 중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간송본’(일제강점기에 간송 전형필 선생이 안동에서 구입한 해례본)의 가치와 ‘상주본’에 얽힌 흥미진진한 얘기가 백미를 이루었다.

한글 애호가들인 참석자 대부분은 간송본을 국보 제70호가 아닌 ‘제1호’로 올려놓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이는 그보다 더 높은 ‘특호’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런저런 문제들로 분위기가 가마솥처럼 달구어진 시간은 이대로 ‘한글사용성평가위원회’ 위원장 사회로 진행된 종합토론 시간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강연하고 답변까지 한 김영복 감정위원(KBS1 ‘진품명품’ 출연)은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선생이 1940년에 거금을 주고 손에 넣은 간송본의 당시 구입가격 ‘1만1천환’이 당시의 큰 기와집 11채 값, 지금 돈 110억 원에 맞먹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상주본이 2008년 공개된 이후 이 고서를 사겠다는 물주를 앞세우고 당시 보관자와 ‘50억원’에 사고팔기로 흥정까지 마쳤으나 그 직후 현 보관자인 배 모씨와의 사이에 일어난 소유권 다툼 때문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며 숨은 일화도 소개했다.

김 위원은 또 간송본을 아직까지도 ‘국보 1호’로 지정하지 못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일로, 일제의 잔재를 걷어내지 못한 결과이자 ‘문화적 수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상주본은 글씨를 한 번 쓴 뒤 (한지를) 뒤집어 재사용한 것”이라며 서지학 (書誌學, bibliography) 용어로 ‘휴지본’이라고 설명했다. 첫 보관자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가 팔아치운 직후 값어치가 대단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도난’ 문제로 몰아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송사는 9년간 계속되고 있고, 2015년에는 배씨의 집에 불이 나 상주본 일부가 불에 타기도 했다.

이상규 경북대 교수는 “상주본은 원래 30장인데 18장 말고는 볼 수가 없고 완본이 아니다. 간송본과 똑 같은 판본은 맞지만 결손본일 뿐”이라며 현 소장자가 무언가 계속 속이고 있는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또 상주본을 처음 공개할 당시 발견했다는 이가 MBC 기자(PD)에게 ‘우리 집 천장에서 발견됐다고 할까요?’라고 되묻는 말을 녹취한 기록을 지금도 갖고 있다면서 “어디서 칼 맞을지 몰라 공개를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국보 70호’ 간송본이 ‘특호’나 ’1호‘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동국정운(東國正韻=1448년 세종의 명으로 펴낸 우리나라 최초의 운서)의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한 부호’라고 편하한 이숭녕 박사와 K대 계열의 이른바 ‘식민지 계보에 속하는 교수들’이 훈민정음을 ‘가치 없는 것’으로 규정지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날 김영복 문화재 감정위원은 한글문화예술제 주최 측의 행사 진행 방식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가다 갤러리에서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는 시간대에도 바로 가까이 문화의 거리에 설치된 본무대에서 ‘젊은 사람들의 노래’가 끊이지 않아 학술적 분위기를 망가뜨렸기 때문이었다. 김 위원은 학술대회 참석자 대부분이 나이 든 분들임을 의식한 듯, 소중한 한글 문제를 젊은이들도 같이 와서 듣게 해야 옳았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질문-답변 과정에는 국한문 혼용(國漢文混用)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기도 했고 한글의 보조문자로 영어 대신 한문을 내세워 제1외국어로 삼자는 주장도 나와 이채를 띠었다. 이날 총괄사회는 성균관대에서 국어학을 전공한 방송인 정재환씨가 맡아 학술대회에 무게감을 더해주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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