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독에 빠진 도시 구하는 ‘슈퍼히어로 4인방’
술독에 빠진 도시 구하는 ‘슈퍼히어로 4인방’
  • 이상길 기자
  • 승인 2017.10.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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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질에 뺨까지… 취객대응에 날샌다
▲ 울산 남구 중앙병원 주취자응급의료센터 관계자들. 왼쪽부터 옥동지구대 김종태 경사, 중앙병원 정수현 간호사, 중앙병원 신대근 응급실 과장, 옥동지구대 김재일 경사.
술과 범죄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가볍게 마시는 술은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소위 ‘주당’들에게 가볍게 한 잔 하는 건 작심삼일(作心三日)처럼 늘 어려운 일. 술이 과해지면 누구든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만 사이즈가 커지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곤 한다. 과하게 취한 주취자들에겐 일단 부끄러움이 없어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실수는 범죄의 영역으로까지 파고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맨 정신엔 그렇게 온순한 사람이 술만 취하면 난폭해지곤 한다. 그렇게 술은 가끔 악당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도시는 늘 밤만 되면 술독에 빠진다.

그리고 울산에는 그렇게 술독에 빠진 도시를 구하기 위해 밤낮으로 애를 쓰는 4명의 슈퍼히어로들이 있다. 바로 남구 중앙병원 주취자응급의료센터(이하 주취자 센터)를 지키는 4명의 경찰이 그들이다.

울산 주취자 센터는 지난 2015년 7월 남구 중앙병원의 도움으로 전국 최초로 민간병원에 들어설 수 있었다. 전국적으로 서울, 경기, 인천에 센터가 있지만 모두 국공립병원에 개설됐다.

경찰의 날(10월 21일)을 앞두고 지난 17일 찾은 주취자 센터에는 2명의 경찰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팀장인 최현권(44) 경위와 김종태(40) 경사로 곧 있을 근무교대를 앞두고 인수인계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현장에는 없었지만 이들 외에도 김재일(44)·최대근(38) 경사까지 총 4명이 돌아가면서 근무를 하고 있다. 또 중앙병원 신대근 응급실 과장 등 4명의 의사들과 간호사 10여명도 돌아가면서 지원을 하고 있다.

아직 이른 저녁이었기에 술에 취해 허우적대는 주취자는 없었다. 하지만 시끄럽고 힘들었던 지난밤의 흔적들은 공기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팀장인 최 경위는 “9월 이후부터 주취자들이 많이 늘어 요즘 좀 힘들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는 주취자는 크게 세 부류가 있다. 과음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만취자를 비롯해 취중에 싸우거나 다친 사람, 또 술 관련 정신질환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역시나 취해서 소란을 피우는 주취자다. 가뜩이나 중앙병원 응급실 한켠에 둥지를 튼 탓에 조심하고 있는데 실려 온 주취자가 소란을 피우게 면 힘이 드는 건 둘 째 치고 난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주취자를 위해 마련된 곳인 탓에 지금껏 공무집행방해로 25명이나 입건됐다. 난동이 심한 주취자는 이들 경찰들에게 주먹을 휘두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최 경위는 “근무 경찰 4명 중 3명이 공무집행방해로 다 고소를 해봤다”며 “심한 경우에는 주취자로부터 주먹질을 당하거나 뺨을 맞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지원을 통해 이곳에 오게 됐다. 근무시간은 12시간으로 4조 2교대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주간-야간-비번-휴무’ 순으로 근무가 흘러간다. 가장 힘든 건 역시 도시가 술독에 빠지는 야간 근무.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진행된다. 하지만 요즘은 실려 오는 주취자들이 많아 목·금·토·일요일에는 비번 없이 야간 지원근무를 해 사실상 ‘주간-야간-야간-휴무’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최 경위는 “보통 주취자 한 명이 오면 2~3시간 정도 시간이 걸린다. 9월 이후부터 지구대나 119에 의해 실려 오는 주취자들이 많아져 요즘은 하룻밤 평균 4명 정도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연령대는 40, 50대가 55% 정도를 차지한다”고 덧붙였다.

낮에도 실려 오는 주취자가 있다는 의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최 경위는 “보통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의 주취자가 75%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 25%는 낮에 실려 온다”며 “그 동안 경험한 결과 낮술을 먹고 실려 온 주취자가 더 위험했다”고 말했다.

실려 온 주취자 중에는 노숙자도 제법 된다. 그럴 때는 이들이 일일이 몸을 닦아준다고 한다. 심지어 대변까지 닦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최 경위는 “우리 일”이라며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센터개소를 위해 자리를 내준 중앙병원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드러냈다.

최 경위는 “우리보다 주취자를 돌봐주는 중앙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이 더욱 고생이 많다. 국공립병원이야 어느 정도 의무가 있지만 민간병원은 그렇지 않은데도 전국 최초로 자리를 내준 중앙병원에 고맙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또 “주취자센터가 응급실 옆에 있다 보니 소란 등을 피하기 위해 중앙병원 응급실을 회피하는 환자들이 적잖다. 어떤 경우엔 좁은 공간의 주취자센터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응급실은 텅텅 빌 때가 있다”며 “그럴 때 가장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가끔 미성년자들이 주취자 센터로 실려 오는 경우도 있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술에 젖어 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며 부모들의 관심을 당부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4명이 함께 회식하면서 술 한 잔 할 때도 있냐는 질문에 최 경위는 술이라면 다소 진저리난다는 듯이 살짝 웃고 말았다. 이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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