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일기]할머니의 요양병원
[목회일기]할머니의 요양병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0.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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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 소리가 울려대더니 군대 간 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카의 전화를 받은 고모는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조카가 “고모도 있고 아빠도 있고 큰아빠도 있는데 왜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느냐”며 울었기 때문에 고모는 가슴이 먹먹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할머니와 손자는 오랫동안 서로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에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더욱 애틋한데 손자가 어느 날 입영 통지서를 받았다. 손자는 할머니가 걱정할까봐 군대 갈 날을 겨우 며칠 남겨 놓고 할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누구나 가야하는 군대지만 보내야하는 할머니도 가야하는 손자도 걱정이었다. 손자는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와서 “할머니 군대 갔다 오겠습니다” 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혼자 두고 가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지면서 어린 손자는 할머니 집으로 오게 되었다. 손자가 초등학생일 때 할머니는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왼쪽 수족에 마비가 왔지만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세 식구가 살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장애를 가진 할머니와 손자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철없는 손자는 말대꾸를 하고 버릇없이 굴며 할머니 속을 썩일 때도 있었지만 할머니를 도와드리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가게 되었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와 손자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으니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었다. “몸조심하고 거시기 잘하라”며 지갑에 꼬깃꼬깃 넣어두었던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며 손자를 군대 보내는 할머니도, “내 걱정 말고 할머니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건강하게 잘 계시라”며 할머니를 걱정하는 손자도, 눈가에는 이슬이 촉촉이 맺혔다.

손자가 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는 날이 되었지만 할머니는 손자를 보러 갈 수가 없었다. 할머니와 손자의 상봉은 손자가 자대 배치를 받고 군대생활을 하다가 첫 휴가를 나와서야 이루어졌다.

손자가 건강하고 더 믿음직한 사내로 자란 것 같아 마음 뿌듯한 할머니는 고생했다며 손자의 손을 잡고 반가움의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도 잘 지내고 계셔서 손자는 걱정을 덜었고 할머니가 시켜주시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친구도 만나다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부대로 복귀했다.

몇 달 후 군대에 있는 손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평소 같으면 할머니가 받아야 하는데 이날은 할머니 집에 가 있던 고모가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는 몸이 좀 불편해서 다음에 바꿔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군대생활 잘하라고 했지만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조카의 목소리에는 걱정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군대에 있는 손자에게 걱정거리를 알리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뇌졸중이 더 악화되어 걸을 수가 없어 화장실도 갈 수 없고 대소변을 받아내야만 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온 후 자녀들이 모여 대책을 의논했지만 집에서는 24시간 간병할 사람이 없어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했다.

노인들 사이에는 요양병원에 가면 자식들도 안 찾아오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현대판 고려장 이라는 이야기를 평소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들어온 할머니는 요양병원 가는 것을 죽기만큼 싫어하셨는데 요양병원에 가자는 말에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셨다. 그런 차제에 걸려온 손자의 전화를 차마 바꿔주지 못했던 것이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자녀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어머니를 설득하여 요양병원에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집 열쇠며 통장까지 큰아들에게 다 넘겨주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시내에 있는 요양병원에 모셨을 때 할머니는 설움의 눈물을, 어머니를 병원에 맡기고 나오는 자식들은 불효하는 것 같은 마음에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할머니가 간신히 적응해 가고 있을 무렵 통화가 안 되는 것을 이상히 여겨 전화를 걸어온 손자에게 사실대로 말해주고 할머니를 바꿔 주었다. 말이 어둔해진 할머니가 손자와 통화하면서 “히쮸(휘수)야 나는 이제 죽은 목줌(목숨)이나 마찬가지다. 빙원(병원)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 하면서 울자 손자도 흑흑 한바탕 울었다. 손자는 집에 할머니가 안 계신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며칠 후 휴가를 나온 손자는 아침저녁으로 요앙병원에 가서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붕어빵과 과일을 사다드리며 곁에서 시간을 보낼 정도로 할머니에게 깊은 효성을 보여드렸다.

노인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되어 가정을 방문하여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봐드리는 재가노인요양제도와 함께 중증환자를 모실 수 있는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이 생겨 환자와 보호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에게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은 가기 싫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곳,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매스컴을 통해 환자를 결박하거나 신경안정제를 과다 투약하고 노인들을 학대한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좁은 침대가 유일한 자신의 공간인 환자들이 침대에서 누웠다 일어났다 하며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좀 더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요양병원, 요양시설이 되었으면 한다.

요양병원, 요양시설을 경영하는 분들이나 종사자들은 수입의 수단이 아니라 노인들이 인생의 마지막에 거쳐 가는 곳에서 평안히 머물다 가실 수 있도록 돕는 헌신적인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여 서비스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도록 현실에 맞는 재정적 지원도 이루어져 요양병원이 집보다 더 편한 곳이라는 인식이 들게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병곤 새울산교회 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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