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노조위원장의 고백
前 노조위원장의 고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0.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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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 위기설이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자동차업체 노동자가 올해 퇴직을 앞두고 후배 노조에 동반자적 노사관계를 주문하는 메시지를 남겨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대차노조 설립을 주도한 1세대 노동운동가 이상범 前 위원장(현대차노조 2대 위원장)은 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현대차 해외공장 방문 소감을 전하면서 노조 스스로의 변화를 주문했다.

1979년 9월 현대차에 입사한 이 前 위원장은 중학교 중퇴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울산시 시의원과 북구청장까지 역임한 노동계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는 국내공장과 대비되는 해외공장의 놀라운 생산성과 품질수준, 근로자들의 마음가짐 등을 담담하게 전했다. 노조가 경영권 행사에 사사건건 개입하지 않고 유연한 전환배치와 혼류생산 등 생산관리에 어려움이 없다는 점 등에서 해외공장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신차 개발을 해서 설비를 다 지어놓고도 맨아워 협상에서 노조의 동의를 받지 못해 제 때 투입하지 못하는 국내공장 사례는 경영 측면에서 치명적이라고 꼬집었다.

러시아공장의 경우 생산직 초임 110만원 수준에 상여금 연 100%, 복지수준도 국내공장에 비할 바 안 되지만 작업환경과 임금, 복지수준 면에서 선망하는 직장으로 손꼽히고 있어 노동자들이 노조결성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했다. 조기퇴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근무 중 스마트폰 삼매경인 국내공장 일부 근로자들의 모럴해저드를 빗댄 듯 근무시간에 유동인원이 거의 없이 열심히 일하는 해외공장 근로자들의 성실한 근무태도를 소개하기도 했다.

생산성, 원가절감 등 몫을 키우는 문제에선 노조도 협력해야 하고 지금과 같은 대립적 노사관계로는 회사의 미래는 물론 한국자동차 산업의 미래도 걱정이라는 외침은 노조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임이 분명하다.

해외공장 방문기에 따르면 2015년 2월 현대차노조 전현직 위원장과 집행부 간부 등 14명이 9박11일의 일정으로 독일, 러시아, 체코, 중국을 방문해 현지공장을 둘러봤다고 한다. 이 前 위원장은 해외공장 방문은 2014년 전 현직 노조대표자 간담회에서 노동조합의 새로운 기풍을 정립해 보자는 취지로 당시 지부장이 제안을 하면서 시작됐다고 추진 배경을 밝혔다. 아울러 독일 금속노조 및 자동차 산업의 단체협약 과정과 임금체계를 살펴보고 생산성과 품질, 총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 등 국내공장에 비해 해외공장 경쟁력이 월등하다는 주장이 정말 사실인지 실제로 가서 확인해 보자는 취지였다고 전했다.

다녀온 지 벌써 2년이나 지나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당시 해외공장을 함께 다녀 온 전직 위원장을 비롯해 그 어떤 노조 간부도 시도하지 못했던 용기 있는 고백이라는 점에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올해 정년퇴직을 앞두고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시간적 절박감이 마음 한 켠에 눌러두었던 이야기의 빗장을 풀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노조 지도자는 시야를 넓혀 동반자적 노사관계를 지향해야 하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선배 노동자의 담담한 충고를 후배 노동자들이 너무 늦지 않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노조에 대한 외부의 비판에도 귀를 닫을 게 아니라 겸허히 수용하고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나지막한 외침이 현대차 노조 내부의 환부를 도려내고 새 살을 돋게 하는 변화의 불씨가 되길 바란다.

국내공장이 생산성, 생산 유연성, 근무 모럴 등 많은 부분에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80년대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노동운동이 지향하는 패러다임도 시대 흐름에 맞게 바꿔 나가야 한다.

이주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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