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과 임명직
선출직과 임명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0.1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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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울산 교육계 내부에서는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수감된 김복만 교육감을 대신해 권한대행을 하고 있는 류혜숙 부교육감의 리더십이 화제다. 권한대행에게 무슨 리더십이냐고 하겠지만 그가 권한대행을 맡은 후 해결된 각종 교육현안들을 살펴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우선 시교육청과 동구청 간의 줄다리기로 10년 가까이 끌어온 교육연수원 이전 문제가 해결을 앞두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해결 직전까지 갔다가 꼬리를 내린 적이 이미 여러 차례 연출되긴 했었지만 이번엔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관건인 이전 비용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김 교육감 구속 이후 독자적인 연수원 이전 추진을 통해 북구 구 강동중 부지로 확정했다. 폐교부지를 활용하게 된 만큼 이전 비용은 대폭 줄었고, 이제 예산 확보만 남겨두고 있다. 김 교육감의 ‘연수원의 동구 내 이전’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던 동구청의 반발은 여전하지만 동구 입장에서도 관광 동구 건설을 위해서는 하루 속히 연수원을 이전해야 하는 만큼 반발 명분이 확실하지는 않아 이전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류 부교육감이 연수원 이전 문제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는 그가 권한대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실제로 류 부교육감은 권한대행이 막 시작되던 지난 5월 중순께 기자간담회에서 “관리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시 말해 연수원 이전문제 같은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손대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었다. 울산 출신도 아닌 임명직 부교육감이 그런 굵직한 사안을 건드리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을 터. 하지만 불과 몇 주 후 그의 눈은 매의 눈으로 바뀌었고 연수원 이전 문제는 이제 해결 직전까지 오게 됐다.

당시 시교육청의 속내를 요약하면 이거다.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다시 장기 표류할 게 뻔하다’는 것. 맞는 말이다. 돈은 부족한데 차기 교육감 후보들은 동구민들의 표를 의식해 김복만 교육감처럼 ‘동구 내 이전’을 다시 공약으로 삼을 게 뻔하고, 그럼 장기표류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건 명약관화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동구 정치권 일각에서도 이런 시교육청의 생각에 동조해 류 권한대행의 이 같은 결단이 옳다고 보는 시선이 있다.

후문에 따르면 김영오 교육국장과 이중규 행정국장의 설득이 컸다고 한다. 처음에는 관리만 하려 했던 류 권한대행은 결국 그들에게 설득을 당해 지역 교육계 수장으로서 소위 총대를 메게 된 것이다.

권한대행 체제 불과 5개월이지만 지역 교육계의 또 다른 골칫거리인 중학교 무상급식 확대 문제도 해결됐다. 관건은 교육청과 시 및 5개 구군 간 비용 분담비율이었고, 차기 선거를 염두에 두고 굳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되는 임명직의 장점을 한껏 살려 해결이 됐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성신고 일반고 전환 문제도 마찬가지다. 만약 학부모들의 표를 의식해야 하는 선출직이 교육계 수장이었다면 성신고 학부모들의 원성을 쉽게 견디지 못했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연수원 이전 부지가 확정된 후 기자간담회에서 류 권한대행은 이런 말을 했다. “임명직인 만큼 그냥 내가 짊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냥’은 마음을 비웠다는 뜻이다. 마음을 비웠다는 건, 자신에게 돌아갈 이익이나 불이익을 초월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민의를 반영해 좀 더 국민들을 위하는 지도자를 뽑기 위해 선출직으로 바꾼 것인데 임명직에게서 그런 리더십을 보게 될 줄이야. 지방선거는 다가오고 왠지 씁쓸해지는 가을이다.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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