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안고 갈 거예요”
“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안고 갈 거예요”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10.17 1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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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학춤 계승자’ 박윤경씨
 

-‘울산문화원 천막’이 울산학춤의 산실

1998년 초부터 3년 가까이 울산 남구문화원(남구 번영로 224) 뒤뜰에 대형 천막이 둘러쳐져 있었던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구·군별 문화원이 따로 있지만 그 무렵은 ‘남구문화원’이 아니라 오직 ‘울산문화원’ 간판 하나만이 존재감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울산문화원 뒤뜰 천막은 전적으로 ‘울산학춤’을 전수하기 위해 꾸민 공간이었다. 말하자면 ‘울산학춤의 산실’이었던 것.

‘울산학춤’이 태동한 것은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던 1997년의 일이다. 생활터전을 울산으로 옮긴 김성수 선생(64,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조류생태학 박사)이 바로 그 해 펼쳐 보인 것이 울산학춤이었다.

“계변천신 설화를 바탕으로 ‘울산’ 이름을 붙여 제가 만들어낸 창작무가 ‘울산학춤’이지요.”

그의 춤사위를 따라서 익히며 문화원 천막에서 꿈을 키우고 끼를 발산하던 예비춤꾼들의 중심에는 김영미(45, 김영미무용단 대표, 울산학춤보존회 회장)와 박윤경(34, 울산학춤 계승자, 울산학춤보존회 사무국장, 울산무용협회 간사·사진)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스승 김성수 선생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고 있는 제자는 ‘울산학춤 계승자’ 박윤경뿐이다. 햇수로 어느덧 20년째 울산학춤에 매달리고 있는 그녀를 며칠 전 울산문예회관 쉼터에서 만났다.



-꿈 많던 ‘고1 열일곱’에 울산학춤 만나

“어렸을 때부터 꿈이 춤이었어요.” 여중 2년 때부터라고 했다. 제대로 된 춤을 무용학원에서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가정형편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고개를 저으셨다. ‘단식투쟁’도 허사였다.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오른 때문일까? 이 대목에서 그녀는 손수건을 눈으로 가져갔다. “죄송해요. 무용을 전공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옛날 생각이 나서 그만….”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가까스로 뜻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그녀에게 찾아왔다. ‘둘째 손녀’를 끔찍이도 아끼시던 할머니의 격려와 도움 덕분이었다. 그 덕에 울산학춤을 숙명처럼 접하게 되고, 그것도 1기생 자격으로 ‘천막 연습’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 1998년 초입, 꿈이 봄 안개처럼 피어오르던 열일곱 나이 고1 때였고, 아홉 살 위 ‘영미 언니’를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한 가지 숨은 얘기가 있어요.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 춤(울산학춤)을 반드시 계승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가르쳐 주시겠다고 말이죠.” 아무리 스승이라지만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일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용 꿈나무들이 예쁜 한복차림 대신 볼썽사납게, 갓 쓰고 도포 걸친 채 춤사위를 풀어 나간다는 것이 선뜻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

여하간 ‘울산학춤 계승’의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김 선생의 제자가 한 스무 명쯤 된다는 게 그녀의 귀띔이다. 윤경 씨는 1999년도에 찍었다는 ‘초록색 천막’의 겉모습과 스승과 제자가 학춤 연습에 몰두하는 장면의 사진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해 오고 있다. 온갖 애증의 기억과 함께….

“비도 새고, 모기한테도 뜯기고. 하지만 그땐 어려운 줄 몰랐어요. 울산학춤을 같이 출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요.” 당시 울산학춤을 배우던 이들은 열댓 남짓. 우리 춤으 리듬감을 알고 싶어서 찾아왔다던 ‘내드름 연희단’ 단원들도 그들의 일부였다고 했다.



-스승의 장학금 지원으로 대학원까지

윤경 씨는 천성이 ‘학력’을 애써 탐하는 쪽은 아니다. 울산학춤이란 큰 선물도 끌어안았으니 ‘고졸’ 선에서 만족하려고 했다. 그러나 스승이 가만 놓아주질 않았다. 학문적 바탕까지 든든히 쌓아야 참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며 지엄한(?) 명을 내린 것. “예술적 표현이 뛰어난 춤꾼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춤을 표현하는 데 있어 그 이론이 바탕이 되는 예술인이 되라고 신신당부 하셨거든요.”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아니 억지로 바꾸게 되었다. 첫 단계로 경주 동국대 국악과에 진학했고, 4년간 전통·창작 무용의 이론과 실기 영역을 두루 넘나들었다. 다음 단계에 기다리는 것은 서울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진학이었다. 일주일에 이틀, 한꺼번에 수업 받는 방식을 택했다. 서울 사는 대학친구가 ‘기댈 언덕’이 돼 주곤 했다.

이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것은 스승의 ‘장학금 지원’이었다. (김성수 선생은 지금까지 지갑을 털어 대학교에 진학하는 제자들에게 학비가 될 만큼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대학원을 마치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듬직한 자양분은, 두말할 나위 없이, 스승이 가르쳐준 ‘울산학춤’이었다.

그녀의 결심도 무르익어 갔다.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어요. 이 춤만은 꼭 추어야겠다, 이 춤의 맥을 죽을 때까지 이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굳어졌어요.”

하지만 처음엔 스승이 두려움의 존재였다. “사실 호랑이처럼 무서웠어요. 그래서 찍소리도 못했죠. 그리고 그땐 외지인데다 환경도 너무 열악해서 언제 훌쩍 떠나버리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러나 2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은 격세지감 비슷한 걸 느끼는 모양이다. “요즘은 제자의 말을 곧잘 들어 주시고, 물어봐 주시기도 하죠. 착각일지 모르지만, 선생님께서 누구에겐가 의지하고 싶으신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씩 있어요. 어쩜 연세 영향인지도 모르죠.”

스승을 애잔한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게도 된다는 얘기였다. 부모 이상의 느낌으로 다가온다고도 했다.

 

▲ 박윤경씨가 스승 김성수 선생에게 울산학춤을 지도받고 있다.



-12월 19일 대공연장서 20돌 기념공연

춤꾼 박윤경 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잠도 모자랄 지경이다. 무용계의 가을걷이가 태산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학춤 강의하러 나가야 하고, 가을 공연 준비도 해야 하고….”

사실 그녀는 요즘 하는 일이 많다. 울산시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손잡고 마련하는 토요문화학교에도 나가야 하고, ‘찾아가는 어르신 문화예술 공연’에도 같이 어울려야 하고, 시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맡아야 한다. 이 모두 ‘울산학춤의 저변 확대’를 위한 힘찬 날갯짓들이다.

가을 공연에 선보일 춤은 학춤만이 아니다. 태평무를 비롯해서 대학-대학원 과정에서 갈고 닦은 전통무용은 차고 넘친다. 지난해 여름 문예진흥기금을 받아 태화강대공원 느티마당에서 난생처음 ‘박윤경’이란 이름을 걸고 펼쳐 보인 개인공연 무대만 해도 그랬다. 학춤이 아닌 또 다른 우리 춤을 들고 나갔었다.

그밖에도 숙제거리는 더 있다. 어쩌면 가장 어깨가 무거운 과제물일지 모른다. 1997년에 씨앗을 뿌렸으니 올해가 ‘울산학춤 탄생 스무 해’ 되는 해다. 특별히 기획한 ‘울산학춤 발표 20주년 기념공연’을 위해 대관 협의도 벌써 마쳤다. 계변천신 설화의 주인공 ‘울산 두루미들’이 날아들 무대로 울산문예회관 대공연장을 점찍었다. ‘12월 19일’이면 겨우 두 달 코앞이다. 몸이 둘이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품격 높은 홍보대사… 익산서도 배우러

‘울산학춤 계승자’ 윤경 씨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한 우물로 여기고 매달려온 ‘울산학춤’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할 작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춤만 고집할 생각은 없다. “울산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정진 또 정진하여 춤 문화예술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포부다.

바쁜 사람을 붙들고 민감한 질문 몇 가지를 같이 던져 보았다. 먼저 울산 무용계와 외지인들이 울산학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를 물었다. 윤경 씨는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서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알려지기 전과 지금, 울산학춤에 대한 인식에는 차이가 많은 것 같아요. 울산시립무용단의 송년 공연이나 울산무용협회 정기공연에도 올라갈 만큼 울산 무용계에서는 울산학춤을 ‘울산의 춤’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학계의 무용인들은 울산학춤을 논문 주제로 삼기도 하구요.” 실제로 울산학춤에 관한 논문들이 다수 나와 있다는 것이 그녀의 귀띔이다.

공연을 다녀온 ‘다른 지역’의 반응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아~ 울산학춤! 너무 멋있어요’라든가 ‘저 울산학춤 배우고 싶어요~’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울산학춤을 ??에서도 봤어요’ 혹은 ‘저는 TV에서 봤어요~’라는 말도 자주 듣고요.”

다른 지역에서도 울산학춤을 ‘예술적 표현이 뛰어난 춤’이라며 공연 섭외나 문의가 많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울산학춤을 배우러 전북 익산에서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올 정도라고도 했다.

사실이라면 대단한 소득이자 자긍심이다. 어찌 보면 울산학춤은 울산의 도시품격을 한껏 드높이는 홍보대사일지 모른다. 20년 역사에다 예술성까지 겸비한 춤. 그 춤을 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안고 가겠다는 박윤경 씨의 표정이 이날따라 보름달처럼 밝아 보였다. ‘산전샘’이 있는 중구 동동이 고향이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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