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한국인
불행한 한국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0.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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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불행하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탄핵으로 감옥으로 보내고, 촛불정치인들은 아직도 적폐청산(積弊淸算)이란 미명(微明) 아래 과거정권, 즉 보수세력에 앙갚음하는 중이다. 이건 아니란 생각이며 ‘일반화의 오류’에 가까워 보인다.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정치사상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현세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적 체계에서도 행복(eudaimonia)은 궁극의 목적이었다.

또,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행복은 돈(경제력)을 떼어놓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가구총소득이 연 1억800만원이 될 때까지는 행복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면 시간당 임금과 가구소득이 더 오르더라도 행복도가 정체되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감지됐다. ‘이스털린의 역설’이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미국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1974년 주장한 개념이다.

물론 행복의 개념은 매우 주관적이다. 경제적 안정 외에 화목한 가족도 필요하고, 건강해야 한다. 친구·친지 등 공동체와의 관계, 종교적 신념, 타인과의 비교도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성격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유전적 성향도 무시하기 힘들다. 한국인의 행복도가 경제 발전에 비례해 높아지지 않고 있으며 수년째 정체하는 모습인 것도 행복의 이 같은 속성 때문이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행복도는 2014~2016년 평균 5.84점으로 세계 56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순위(28위)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가 잘 아는 노르웨이는 일과 휴식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축적한 부를 신뢰 높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사용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행복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나라다. 부탄은 국왕이 주도해 행복지수(GNH)를 개발하고, 이를 국가 운영의 틀로 삼으면서 국민행복도를 높였다. 일본은 미래보다 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작은 행복’을 확산시키고 있다. 원조경제에서 자립경제를 추진하는 탄자니아는 부패, 소득불평등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행복경제학이 시작된 지 43년이 됐다.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1974년 행복의 개념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적용하기 시작하면서다. 실제로 지표들이 만들어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평가방법에 따라 순위가 뒤바뀌는 일도 많다. 하지만 한국은 특징이 있다. 어떤 식으로 평가해도 경제력에 비해 행복지수가 낮다는 사실이다. 경제는 성장해도 한국인의 행복도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경제학에서 좋은 삶에 대한 해답을 얻기는 어렵다고들 이야기한다.

기쁨은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행복=기쁨’의 등식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상을 받을 때는 기쁘지만, 그 기쁨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복권에 당첨될 때의 기쁨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오래가지 않는다. 기쁨은 시험을 잘 보거나, 게임에서 이기거나, 맛있는 식사나 쇼핑을 하는 것과 같은 사건에서 느끼는 일시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즐거운 일이 매일매일 반복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상황에 금방 적응하기 때문이다.

학생에게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고, 직장 구하려고 끝없는 경쟁을 해야 하고, 장시간 근로가 당연시되고, 여성에게 일과 가사 부담을 씌우는 상황에서 행복을 높이기는 어렵다. 행복의 길이 있으면 찾고, 없으면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네의 책무(責務)란 생각이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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