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성장 태동기를 간직하고 있는 원도심 전통시장
울산의 성장 태동기를 간직하고 있는 원도심 전통시장
  • 이원기 기자
  • 승인 2017.09.2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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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시장 입구부터 출구까지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었제”
▲ 옥골시장 전경.

-1960년 울산공업지역으로 지정

-전국 각지에서 울산에 헤쳐모여

-뜨내기 쉬어갈 장급여관 수두룩

-주리원·미도파백화점 한때 흥행

최대 10일에 달하는 추석 황금연휴를 앞둔 현재 울산의 모습은 예년만큼 들뜬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주력산업인 조선과 자동차, 석유화학 업계의 침체로 IMF도 피해갔다고 하는 울산의 위기 소식은 더이상 놀랍지 않다.

경기가 침체 할수록 오히려 ‘서민주’인 소주판매량은 증가한다는 분석결과가 있다. 그말인 즉슨 불경기의 시름을 소주로 달래며 예전 풍요로웠던 시절을 추억하고 곱씹는다는 이야기다.

울산도 그런 풍요롭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 울산이 공업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울산으로 모여들었다.

현재 중구 원도심은 이런 울산의 모습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뜨내기들을 위한 장급 여관이 수도 없이 생겼고 울산극장이나 태화극장 같은 영화관에는 젊은 인구가 북적였다. 미도파백화점이나 주리원백화점 등이 문을 열어 “돈을 벌었지만 쓸 곳이 없었던” 당시 울산 근로자들의 수요를 맞춰주기도 했다.

그 중심에 전통시장이 있었다.

중구지역에는 태화5일장을 비롯 4~5곳의 크고 작은 전통시장이 있지만 60~70년대 산업수도 울산의 태동기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던 곳은 당시 최대 상업지역에 위치한 울산중앙시장과 구역전시장이다.

우리는 추석 명절을 맞아 중앙시장과 구역전시장을 방문, 여전히 오래된 점포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에게 성장 태동기 울산의 옛 모습을 듣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추억은 지나가버린 것 같지만 의외로 오늘과 내일을 희망차게 살아가도록 하는 커다란 힘을 갖고 있다.

◇따뜻한 죽 한 그릇과 연일 꼼장어 굽는 냄새

울산중앙시장과 바로 인접한 옥골시장 죽골목에서 파는 따뜻한 팥죽 한그릇은 시장통을 찾은 뜨내기 근로자들에게는 속과 마음을 달래주는 최고의 한끼 식사였다.

죽골목에서 30년 가까이 죽을 팔았다는 정초옥(73) 할머니는 당시 죽골목의 분위기를 잘 기억고 있었다.

정 할머니는 “한창일 때는 이 좁은 골목에 사람들로 빼곡히 찼어. 팥죽, 호박죽 그릇을 들고 서서 죽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지”라며 “그땐 죽도 매일 동나고 돈도 많이 벌었어. 얼마 벌었는지는 비밀이야”라고 웃었다.

옥골시장에서 떡을 파는 최금자(73) 할머니도 “여기서 50년 안되게 장사를 해왔는데, 한참 잘될 때는 이 떡집 앞에 돗자리, 간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곤 했어”라며 “너도 나도 자리를 잡는다고 다투는 모습이 아주 진풍경이었어”라고 말했다.

최 할머니는 “이제는 옛날만큼 떡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진 않아. 요즘 젊은 사람들이 떡을 좋아하나”라며 “옛날에 왔던 사람들만 추억 찾아 떡을 사러오고, 나도 그 사람들이랑 옛날 이야기하는 게 좋아서 아직 장사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45년 동안 중앙전통시장에서 장사를 해온 김부자(74) 할머니에게도 이곳 시장은 참 고마운 곳이다. 통닭 가게를 거쳐 꼼장어 가게까지 운영하며 슬하 다섯 자녀 모두 대학에 보내서다. 김 할머니는 울산역이 원도심에 있을 때를 회상하며 운을 뗐다.

“옛날에는 여기 시장 입구부터 저기 출구 끝까지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지. 한번은 남자 꼬맹이가 지 누나 손잡고 가다가 놓쳤는데, 그대로 인파에 밀려서 미아가 됐어. 누나 찾아준다고 정말 고생도 아니었는데. 가만, 그때가 언제고...”

김 할머니는 중앙전통시장이 번영했을 당시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는 “명절이고 주말이고 야채, 생선 파는 노상들이 일렬로 쭉 깔려 있었지. 꼼장어 골목에는 연일 꼼장어 굽는 냄새가 풍겨 퇴근하는 아저씨들 발걸음을 잡았어”라고 말했다.

이토록 시장에 애착이 크지만 대목을 앞두고 텅 빈 시장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김 할머니는 “명절 차례상 준비에 필요한 어시장, 야채가게, 정육점도 없는데, 사람들이 시장을 찾을 이유가 없잖아”라며 회한 어린 표정을 지었다.

 

▲ 옥골시장 '죽골목'.

◇ 울산 중심상권 한축 역전시장

울산역이 중구지역에 위치해 있던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학성동 지역은 성남·옥교동과 함께 울산 중심상권의 한 축이었다. 그 중심에 현재 구 역전시장으로 불리는 역전시장이 있었다.

울산역이 이전하고 남구 삼산동에 도심이 이동하면서 지금은 상권이 크게 약화된 구 역전시장을 둘러봤다.

시장 노상에서 곡물을 파는 김명자(76) 할머니는 역전시장 인근에 있던 학성여중을 졸업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상인들보다 역전시장 주변 풍경들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역전시장 뒤에 경남은행 쪽이 원래 울산역 자리였고, 버스터미널도 시장 근처에 있었어. 그때는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라며 “세민병원 알지? 거기는 한옥촌이었고 저기 복산성당 옆에 빨간 건물은 원래 화장터였는데 많이도 변했지”라고 말했다.

역전시장에서만 40년동안 야채, 과일 등을 판매하며 노점을 운영해온 김복주 할머니는 슬하 3명의 자녀들이 모두 대학에 갈 때까지 역전시장 곳곳을 전전하며 장사를 했다고 한다. 김 할머니 역시 문전성시를 이뤘던 옛 역전시장의 외형이 지금 모습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노상 앞은 원래 물이 흐르는 도랑이었어”라며 “차가 드나든다고 도로로 덮여버렸는데 삭막해진 것 같아. 역전시장 내에서 장사하면서 여기저기 많이 쫓겨나기도 했어. 자리 싸움도 치열했거든. 엄마 손 잡고 시장 오는 어린이들도 참 많았는데”

김일부(73) 할아버지는 구 역전시장에서만 일한지 36년 째. 이 시장에 하천이 졸졸 흐를 때부터 일했다고 한다. 지금은 노점에서 생필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로 붐비던 역전시장을 회상하다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자주 오던 손님 중 한명은 글쎄 스님이 됐더라고. 여기서 장사하다가 돈이 벌리지 않으니 택시기사로 전향한 친구도 있고. 다들 자주 얼굴보면서 인사하던 사이였는데 요즘은 통 보이지 않네”

구 역전 시장 안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던 김옥분(74)할머니 역시 일생을 역전시장과 함께 해왔다. “할머니는 역전시장하면 전국에서 알아주는 시장이었어. 경주며 호계며 여기저기서 와서는 생활용품을 한보따리씩 사서 갔단 말이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구 역전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사뭇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인근 대형마트들에 젊은 손님들 다 뺏기고 아침 일찍 열리는 도매시장 때 오는 우리 나이 또래 할매, 할배들 아니면 오는 사람 없어”라고 했다.

또 “이제는 다들 늙어서 취미로 장사하거나 심심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야”라며 “다 자식들 키우고 할꺼 없어서 사람 구경하려고 나오는거라니까”라며 아쉬워했다.

글=이원기 수습기자· 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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