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잔치 ‘골목 페스티벌’
주민들의 잔치 ‘골목 페스티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9.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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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동구 중진1길’ 골목의 2층짜리 일본식 가옥 ‘부산이불점’. 오랫동안 이발소였던 이 건물 1층 머리맡에 못 보던 글씨가 나붙었다. ‘전시실’이란 예쁘장한 글씨다. 그 옆 벽면엔 ‘방어진항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란 글씨도 돋보이게 붙여놓았다.

겨우 몇 뼘 됨직한 다다미방이 온통 전시품 천지다. 방어진으로 시집온 각국 결혼이주여성들이 일본 가카와 현(香川?) 출신 사카시타 사나에(坂下苗, 47)씨의 지도를 받으며 만들었다는 갖가지 소품들이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천으로 모양을 낸 ‘가자미’는 이 골목처럼 제법 살아 꿈틀거리는 느낌마저 준다. ‘부산이불점 주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비게 된 공간을 세를 주고 지원센터로 꾸몄다고 했다.

“‘방어진국민학교’ 졸업생치고 이불점 하시던 이 댁 모친 신세, 안 진 사람 없을 겁니다. 학생들이 명찰에 이름을 새겨야 했으니까….” 8대째 방어진 토박이라는 김학섭(58, 통장)씨가 옛날얘기를 넌지시 들려주었다. 또 한 가지 눈길 끈 것은 이불점에서 마주보이는 길 건너편 언저리의 공중목욕탕 ‘장수탕’이었다. 주민들 말을 빌리면 ‘울산서 제일 먼저 생긴 목욕탕’이다. 일제강점기에 오카야마 현(岡山?) 비젠시의 히나세(日生) 마을 주민들이 집단 어업이민 모양새로 들어와 살던 무렵의 일이니 100년은 좋이 됐을 것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히나세 골목’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200개 남짓한 행사용 의자가 하나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의자를 메워 나갔다. 팥빙수도 파는 ‘밀양보리밥’ 앞자리까지 거의 다 채워질 무렵 6미터너비, 100미터 길이의 좁다란 골목에도 활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저녁 6시쯤 격려사를 마친 권명호 동구청장도 선 채로 행사를 구경해야 했다.

이날 행사- ‘방어진항 골목 페스티벌’은 한마디로 ‘주민들의, 주민들에 의한, 주민들을 위한’ 순수한 마을잔치였다. 현장지원센터장 겸 총괄기획자인 우세진 울산과학대 교수(공간디자인학부)가 분위기를 전했다. “철저히 주민들이 주인 노릇 하도록 기획한 행사입니다. 2020년쯤 마무리되는 방어진항 도시재생 사업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공식 초청장은 VIP 아무 한테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행사장을 찾은 구청장이나 박학천 시의원, 김수종·홍유준 구의원한테도 마찬가지라 했다.

방어진항에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은 많아야 6채. 이 가운데 4채가 ‘골목 페스티벌’이 열린 중진1길 32번지 일대에 몰려있다. 사업비 지원 정도만 해준다는 권명호 구청장이 ‘히든스토리’를 들려준다. “개발 소문이 도니 업자들이 덤벼듭니다. 아파트를 지으면 할머니들이 가실 데가 없잖습니까? 안 되겠다 싶어 구청예산(7억원)으로 골목 집 두 채를 얼른 사들였지요,”

도시재생 사업은 2년 전 정부가 ‘국비 50% 지원’ 조건으로 내놓은 주민공모 사업. 전국적으로 33건이 선정됐고 ‘방어진항 도시재생 사업’도 동반당첨(?)의 행운을 거머쥐었다. ‘골목 페스티벌’을 기획한 우세진 교수는 이에 힘입어 차근차근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골목 입구의 ‘장녹수식당’을 사들여 ‘사료관’으로 꾸밀 참이다. 내년 1월엔 ‘제3기 도시재생대학’을 열어 마을활동가를 더 배출할 참이다. 사업 종료 시점엔 다문화가정도 참여하는 마을기업 3개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그동안 도시재생대학 1,2기 수료생들 가운데 13명이 선진지 견학(부산 ‘감천 문화마을’, 대구 ‘김광석 스토리하우스’ 등)을 거쳐 마을활동가 자격을 땄고, 7개 팀으로 나뉘어 방어진항 재생의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주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에 용기를 얻은 ‘월계수사진관’ 집안에선 가업을 4대째 계승할 준비가 한창이다. 20년 전 대구서 건너온 ‘오징어 선주’ 신추화(여, 55, 마을활동가)씨는 이런 기대를 내비쳤다. “10년 전만 해도 외지 멸치배가 20개 선단이나 들어와 불야성을 이루던 우리 방어진항 아닙니까? 이젠 재생사업이 다시 일으켜줄 겁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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