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영화 '행복까지 30일'
행복의 조건-영화 '행복까지 30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9.2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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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까지 30일 ’의 한장면.

몇 해 전 한 공중파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가운데 <행복의 조건>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의 해답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였다. 재밌는 건 실험이었다. 몇몇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겠냐고 물은 뒤 그 행복의 조건 전후로 행복지수를 체크했더니 결과가 흥미로웠다.

한 20대 여성은 안경 쓴 자신의 모습이 싫다며 라식 수술만 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대답했다. 그 때 서면문항을 통해 제작진이 체크한 그 여성의 행복지수는 60점 정도. 얼마 후 그 여성은 그토록 원했던 라식수술 날짜를 잡았고, 그 순간 행복지수는 80점 이상으로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라식수술을 무사히 마쳐 안경을 벗게 됐고, 수술 뒤 그녀의 행복지수는 90점을 넘겼다. 그런데 몇 개월 뒤 제작진이 다시 그 여성의 행복지수를 체크해봤더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다시 60점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다큐멘터리 속에 등장하는 피실험자 대다수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인도 영화 <행복까지 30일>에서 어린 ‘까마귀알 형제’도 본의 아니게 이 같은 실험을 겪게 된다. 빈민가 아이들인 페리야(비네시)와 차이나(라메시) 형제는 계란 살 돈이 없어 까마귀 둥지에서 알을 몰래 꺼내 먹어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까마귀알 형제’로 불렸다. 그런 어느 날 빈민가 인근에 피자집이 들어서면서 형제는 생전 처음 피자 냄새를 맡게 된다. 미치도록 피자가 먹고 싶었던 형제는 피자 한 판 가격인 300루피를 벌기 위해 계획을 세우게 되고, 하루 10루피씩 30일만 벌면 피자를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

빈민가 아이들을 통해 빈부격차가 극심한 인도 사회의 부조리까지 들쑤시지만 <행복까지 30일>은 제목이 암시하듯 ‘행복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마음에 피자만 먹으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던 까마귀알 형제는 결국 피자를 먹게 되지만 잠시 뒤 형제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 나온다. “느끼해.” 그리고는 평소 할머니가 해준 밥이 더 맛있다는 말까지 보탠다.

여기서 ‘평소’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큐멘터리 <행복의 조건>에는 대다수의 피실험자와 다른 ‘절대행복자’가 한 명 등장한다. 그는 평소에 늘 행복해하는데 실제로 그의 행복지수는 체크할 때마다 늘 비슷했다. 거의 90점 가까이 됐다. 혹시 바보냐고? 아니! 놀랍게도 그는 환경미화원이었다. 또 시인(詩人)이기도 했다. 제작진이 따라 붙어서 관찰한 그의 일과는 이랬다. 환경미화원인 만큼 그의 하루는 늘 이른 새벽에 시작됐고, 일하는 도중에도 그는 틈틈이 좋아하는 시를 썼다. 일찍 일과가 끝나 오후에는 늘 여유가 있었고, 그 시간이면 꼭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 좋아하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눴다. 이게 다였다. 제작진이 그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자 그는 이렇게 말하더라. “내가 이렇게 건강하고, 현재까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지.”

까마귀알 형제가 행복을 위해 기약한 30일 간의 모험도 그러했다. 비록 가난에 쩔었어도 그토록 원했던 피자맛이 느끼해지자 형제는 이미 행복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행복은 기약하는 게 아니다.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 나중에는 또 그 때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래서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소유보다는 행위가 아닐까. 다 떠나 행복이란 것도 그냥 기분일 뿐,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가벼운 미풍에도 흔들리는 그 기분 말이다. 그렇다. 마음만 바꾸면 누구든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다큐멘터리 <행복의 조건>도 결국 이렇게 행복을 정리하면서 막을 내린다. “행복은 내 손안의 작은 새다.” 2016년 6월 9일. 러닝타임 91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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