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 담론(談論)
장수기업 담론(談論)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9.1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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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과 달리 한국에는 업(業)을 오래 이어간 기업, 이른바 ‘장수기업’이 흔하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년 이상 장수기업은 일본이 3천113곳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독일(1천563개), 프랑스(331개)가 있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창업 100년이 넘은 기업이 8개 업체(KT&G·두산·동화약품·신한은행·우리은행·몽고식품·광장·보진재)에 불과하다.

장수하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한 일본에는 장수하는 기업도 많다. 전 세계적으로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은 5천500여개 되는데 이 가운데 3천개 이상이 일본 기업이다. 100년 이상 된 기업이 2만개가 넘을 정도로 일본에는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백년 장수하는 기업이 많다.

급변하는 경제환경에서 오래 살아남는 기업이 많다는 것은 그만한 내공과 경쟁력을 갖춘 곳이 많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은 어디일까? 무려 약 1천440년 전인 578년에 세워진 일본에 있는 목조 건축회사 곤고구미(金剛組)다.

설립자는 백제 사람이자 목공 기술자인 유중광(곤고 시게미츠·金剛重光)이다. 유중광은 593년 일본 최고(最古)의 사찰 시텐노지(四天王寺)를 건립했다. 일본 고베에 위치한 이 사찰은 1995년 10만 채의 건물이 완전히 파괴된 고베 지진에도 끄떡없었다. 이후 일본에선 “곤고구미가 흔들리면 일본 열도가 흔들린다”는 말까지 생겼다.

이 회사는 절이나 불상 등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일을 하다가 2000년대 들어 경영이 악화돼 다른 건설사에 합병됐다. 곤고구미의 장인정신과 사찰건축 전문 기업의 자존심은 1천400년을 넘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1846년 독일 예나에 설립된 ‘칼 자이스’(Carl Zeiss)는 현존하는 광학기기 제조업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다. 고품질 현미경 렌즈 개발부터 시작해 반도체, 자동차·기계공학 산업, 안경·카메라 렌즈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했다. 칼 자이스는 전 세계 관련 기업 중 유일하게 광학현미경, X레이 현미경, 전자현미경 등 광범위한 영역의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이제까지 국내에선 1896년 문을 연 ‘박승직상점’을 모태로 한 ‘두산’이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1883년 개화파 주도로 한국 역사상 최초의 담배제조소인 ‘순화국(順和局)’이 설립된 사실을 국내 학계에서 발견했다. 순화국은 근대 조선의 출발점인 1876년 개항 이후 서양식 연초를 제작하고 이를 해외에 수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영·공영 기업이다. 오늘날의 KT&G가 지닌 역사가 따지고 보면 130년이 넘는다는 의미다.

한국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일념으로 기업을 가꿔 온 기업가와 헌신적인 근로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 기업가는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기업인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 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라이벌’은 독일까 약일까. 라이벌의 존재는 성장의 원동력으로, 반드시 이겨야하는 영원한 숙적이 아니다. 경쟁심을 통해 서로 간 자극제가 돼 함께 발전시키는 관계가 진정한 라이벌이다. 영원한 강자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선의의 경쟁으로 시장 혁신을 이끌어 온 라이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장수기업의 비밀이기도 하다. 물론 ‘장수기업의 조건’도 있겠지만 이웃나라 일본의 장수기업에 대한 연구가 절실해 보인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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