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메모] 어느 분의 자서전(自敍傳)
[굿뉴스메모] 어느 분의 자서전(自敍傳)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9.1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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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지극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할머니의 손에서 어렵게 자랐다. 전후세대들 앞에 전개된 황무지 같은 환경에서 그도 억척스러운 성장과정을 거쳤다.

야간중학교를 다니기 전 수년간 중국집 배달원을 하며 어린나이에 가난을 몸소 체험했다. 자연스레 그는 돈을 벌어 자수성가해야겠다고 갈망했고, 마침내 도망치듯 집을 나와 상경했다. 어느 누구하나 일면식도 없고, 오라고 환영하는 곳도 없었다.

그는 신문배달과 구두닦이를 비롯해 밑바닥 생활을 철저하게 학습하는 세월을 살아야 했다.

한 번은 멋진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가 그에게 구두를 닦으라고 하며 자리에 앉았다.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정반대로 그만 실수를 저질러버렸는데 사과할 새도 없이 뒷목덜미에 ‘콱’하면서 묵직한 무게의 타격이 가해졌다.

그 순간 미안함과 억울함이 뒤섞인 서러운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고 한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당사자에게 있어 고독했던 기억은 오래 가는 법이다.

그런 경험들의 축척으로 말미암아 더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됐고, 마침내 그는 40대에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남부럽지 않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고 자녀들도 태어나 성장하고 사업은 탄탄대로니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혹여 부정탈까봐 그는 정기적으로 점을 보러 갔다.

단골 점집에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점쟁이는 엎드려 절을 할 지경이었다.

복채를 두둑하게 전했으니 기다려지는 단골 1순위였던 것이다.

그는 절까지 지어주는 정성으로 사업의 일취월장과 가정과 일신상의 안위를 빌었다.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해 신문을 읽었는데 기막힌 광고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시아에서 가장 용한 점쟁이가 기막히게 용하게 맞춘다고 했다. 그래서 그곳을 찾아갔다. 하얀 한복을 입은 40대 후반의 점쟁이의 풍채와 위엄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 앞에 앉으니 점쟁이는 주전자의 물을 45도로 기울인 채 대접에 따르기 시작했다.

주르르 흐르는 물이 방바닥 한쪽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 점쟁이가 말했다.

“선생님, 당신은 그릇이 너무 커서 세상이 감당하기 힘 드는 분이군요. 여기서 나가면 곧장 교회로 가십시오. 선생님 사업은 올해 안에 망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가서 믿음생활 잘 하면 반드시 재기하게 될 테니 그때 생각나시거든 복채를 두둑하게 주십시오.” 복을 빌어주기는커녕 사업이 망한다는 소리에 그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울분을 억누르고 단골 점쟁이이게 갔더니 “그 점은 맞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안심하고 돌아왔다. 빠르게 시간이 지나갔고, 그 일도 까맣게 잊고 있을 무렵 본사의 경영악화로 인해 연쇄부도가 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된 그를 반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제까지 친구도, 사업거래처도 안면몰수였다.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 그는 그제야 용하게 맞춘다던 그 점쟁이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그 길로 친구를 따라 교회를 찾았고, 오늘까지 이어온 신앙의 여정에서 30억의 부도를 딛고 재기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부도난 기업이 다시 재기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같이 어렵다고 말했다. 재기를 위한 그의 노력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런 경험으로 그는 명함에 다 채우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일을 맡으며 신앙생활과 자선사업에 몰두하며 좋은 일을 많이 해 왔다. 이 분이 작년 필자가 편집장으로 있는 신문의 이사장으로 추대되었고, 이번에 자서전을 의뢰해 필자는 지금 원고정리를 하는 중이다.

초고(礎稿)는 무르익어 완성본이 눈앞이다. 필자는 가을의 초입에서 파종한 농부의 결실 같은 그 책이 세상에 선보일 날을 기다리고 있다.

박정관 굿뉴스울산 편집장/중구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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