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청의 수준 낮은 역사인식
동구청의 수준 낮은 역사인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9.1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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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들에게 ‘산업수도’로만 널리 알려진 우리 고장 울산은 모든 이들에게 자랑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 등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이 있다. 특히 암흑 같은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한 치의 굽힘도 없이 이 땅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자랑스러운 인물들 또한 울산의 훌륭한 자랑거리 중의 하나이다. 고헌 박상진과 외솔 최현배라는 두 위인들이 울산 출신이라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가슴 뿌듯할 수 있다.

그런 태양같이 뜨거운 조국애와 민족애를 지닌 독립투사들 못지않게 우리 고장에는 일제강점기 동안 어린 학생들에게 배움을 통해 조국 독립과 항일 의지를 심어준 학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군다나 그 학교가 위치하였던 곳이 국가보훈처에서 지정한 울산 내 호국시설 13곳 가운데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는 ‘동구’ 지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더욱 드문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생각에서 ‘동구’라는 지역은 일제의 조선어업 수탈을 위한 전진기지였다가 해방 후 교통과 경제가 낙후된 그저 그런 어촌 마을에서 산업화로 등장한 조선산업으로 주머니가 제법 넉넉해진 지역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말았다.

1922년 사립학교로 인가 받은 후 해방 직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될 때까지 지역 항일 운동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그 학교는 바로 ‘보성학교’이다.

‘동면’으로 불리던 그 시절에 보성학교는 해방까지 약 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지역의 유일한 민족사립학교였다. 학생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며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등 민족애와 항일 의식을 심어준 교육의 요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보성학교 졸업생들과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울산청년연맹 동면지부와 신간회 동면지부 등을 세워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보성학교와 교사들은 늘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었고, 일부 교사들은 수차례에 걸쳐 일제의 고문과 옥고를 치렀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잃게 되는 일도 있었다. 2006년 국가보훈처에서는 보성학교 교사였던 서진문 선생과 이효정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지정하여 건국훈장을 추서하기도 하였다. 이런 보성학교가 1970년대 학교건물조차 멸실된 이후 지금은 그 터조차 도로며 민가 터로 사라져 버리고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울산 동구청에서는 보성학교 복원을 위한 예산 확보는커녕 복원 계획에 대한 청사진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제의 조선어업 수탈 기지였던 방어진 내에 존재하고 있는 일제의 적산가옥을 밑천삼아 ‘히나세 거리’를 조성하여 관광자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방어진항 도시재생 사업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일본주거문화 이해 및 체험, 히나세 골목길 축제, 일본 전통문화·목욕문화 체험하기, 일본 차(茶)문화 체험과 같은 일본 문화 체험이 중심이라고 한다.

이러다가 우리 아이들이 일제에 대항하여 조국 독립을 염원하였던 조상들의 정신은 잊어버리고, ‘기모노’를 입고 ‘게다’를 신고 방어진 한가운데에서 일본의 전통놀이를 즐기면서 일본식 거리 축제를 하게 될지도 모를 지경이다.

일제의 침탈과 식민지배는 우리 민족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고,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는 분단의 원인이 되는 아픈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런 아픔 속에서도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쓴 역사적 자료는 모른 체하면서, 일제의 식민지배를 추억여행 코스처럼 관광상품화 하겠다는 동구청의 역사인식 수준이 한심스러울 지경이다.

심지어 방어진에 정착하였던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이 서로 스스럼없이 살았으며, 방어진항이 일인들과 방어진 주민들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희망의 땅이었다는 구청 관계자의 말에는 말문이 막혀 귀를 씻고 싶을 뿐이다.

김용진 명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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