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업편지]‘마을재생 레시피’
[마을기업편지]‘마을재생 레시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9.0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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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나 요리 만드는 방법을 ‘레시피(Recipe)’라는 일상적 단어로 표현하는데, 이는 방송을 통해 요리 잘하는 남자가 주목받으면서 고착화된 듯하다.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요리 관련 프로그램들이 부쩍 늘어나고 인기리에 부가가치를 더해가는 요즈음 굳이 우리말로 ‘표준조리법’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다양한 형태의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접할 때마다 갖는 느낌이지만, ‘백선생’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백선생이,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요리의 보편화·일반화에 크게 기여한 장본인인 것만은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방송이 고운 한복 차림으로 온화한 어머니의 정성을 담으려 했다면, 지금의 방송은 그 격이 사뭇 다르다. 어떠한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든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음식을, 가지고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요리해 내는 요리사로 만들어주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레시피 개발자로 만들어 유튜브나 각종 SNS를 통해 공유하게 하는 적극적인 경험 공유자이자 생산자로도 만들어주고 있다.

지금의 방송이 가르쳐주는 것은 격식을 갖추고 일부 관심 있는 계층에게만 실행을 이끌어내는 닫힌 조리법이 아니다. 여성만의 영역으로 이미지화했던 조리법은 더더욱 아니다. 누구나 일상에서 실행할 수 있고 일반적 관심과 참여로 확장시켜 온 레시피처럼, 우리를 둘러싼 ‘마을 살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 몇몇이, 유사한 사업을 한두 번 했던 경험자들이, 마을의 모든 문제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진단한다는 소식을 종종 접한다. 마을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그 뿌리를 진단해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드러난 문제-실제 마을에서 붙박이처럼 살아가고 있는 다수의 주민들은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이지만-를 중심으로 해결방안이라는 것을 마치 정석이나 되는 것처럼 책자화한다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가!

우리 지역이나 전국의 여러 마을을 다녀본 경험에 비추어 실제로 전문가다운 전문가는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이다. 이분들의 단점을 굳이 들추어낸다면, 자신들 안의 욕구를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데는 다소 소심하고, 문제라고 느끼지 않았던 문제를 냉철하게 분리하기에는 다소 안이하고, 어떠한 상태로 가져가고 싶은지 궁극적 목적에 대해 다소 모호하다는 사실밖에 없을 것이다. 이분들의 다소 소심하고, 안이하고, 모호한 부분에 자존감과 성취감을 채워준다면 분명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 스스로 마을의 재생을 위하여 두 팔을 걷고 방법을 찾아 나갈 것이다. ‘마을재생 레시피’는 그 첫 고민과 실행 단계에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이 필자의 믿음이다.

마을재생 레시피(Recipe)는 공동체성 즉 마을의 관계망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우선적 고민으로 삼아야 한다. 주민의 소통과 교류의 공간, 마을 의제, 돌봄과 배려 등 행정에 기대지 않고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행정의 도움이나 또 다른 형태의 지역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면 그때 가서 기대어도 늦지 않다. 마을은 살아있고, 주민들은 그 안에서 마을 살이를 하며 서로 함께 살아갈 방법을 경험하고 공유하며, 더 좋은 방법을 찾아 나갈 것이다.

마을의 공동체성을 지닐 수 있으려면 함께 할 일들 즉, ‘마을 의제’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이는 나 이외의 마을 주민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가 중요한 이유다. 이참에 ‘마을 커뮤니티센터’와 같은 마을 속 공유공간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리와 운영은 주민들 스스로에게 맡기고, 마을 커뮤니티센터를 중심으로 마을에서 함께 한 일들을 ‘마을공동체 자랑대회‘라는 이름으로 열 수 있도록 행정기관에서 적은 예산이라도 마련해서 도와준다면, 이는 자발적인 마을재생 레시피에다 자존감과 자긍심을 한 술 더 얹어주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경험들이 이어지고 쌓이면 공동체는 더욱 활력을 되찾고, 그 공동체성은 마을의 재생을 힘차게 뒤받쳐줄 것이다. 또한 재생된 마을이 연대하고 점점이 확장된다면 이것이 바로 ‘주민주도형·주민참여형 도시재생’이 될 것이다.

새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정책’이 광풍처럼 전국을 휩쓸고 다닌 지 여러 날이다. 임기 내에 매년 10조원씩 5년간 50조원을 투입해서 구도심 500곳을 개선한다는 사업목표는 자칫 재생의 옷을 입은 개발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지금까지 도시재생·개발사업이 가져온 부동산가격 폭등과 이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의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바라건대, 도시재생 사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공동체 활성화 및 주민참여형 마을재생 레시피를 적극 개발하고 확장시킬 ‘백선생’이 마을 곳곳에서 더 많이 나타났으면 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중산층 이상이 비교적 빈곤계층이 많이 사는 정체지역에 들어와 낙후된 구도심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저소득층 주민을 몰아내는 현상.

박가령 울산경제진흥원 마을기업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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