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처사(處士)·처녀(處女)에서 처용(處容) 찾기
처서(處暑)·처사(處士)·처녀(處女)에서 처용(處容) 찾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9.0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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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51회 처용문화제는 울산문화재단이 처음으로 운영한다. <처용, 희망을 부르다>가 슬로건이다. 10월 14일~15일 양일간 태화강대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치러진다.

지난해까지 처용문화제의 한 콘텐츠로 열리던 에이팜과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APaMM,?Asia?Pacific?Mu sic?Meeting)은 올해부터 독립 브랜드로 열린다. 에이팜은??이달 15일~17일?개최된다. ‘에이팜·월드뮤직페스티벌’을 독립·탄생시킨 바탕은 처용문화제다. ‘처용문화제’는 1967년에 시작된 제1회 울산공업축제(1967-1987)를 이어 1991년부터 시작된 축제의 명칭이다. 1967년을 기준으로 행사 유·무와 관계없이 횟수를 이어가고 있다. 처용의 상투적 전개는 역신과 처용 아내의 동침이다. 그 결과 처용은 화해와 용서, 관용의 아이콘이 됐다. 처용의 활용적 측면에서 비롯된 처용에의 접근을 벗어나 한자 ‘처(處)’를 통해 이름을 풀이해 본다. 같은 한자가 쓰이는 처서(處暑)·처사(處士)·처녀(處女)를 마중물삼아 접근해 보자.

지난달 23일이 처서(處暑)였다. 그날은 33℃까지 올라가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겨진다’는 속담에서 짐작이 가듯 처서 무렵의 마지막 더위는 까마귀의 대가리가 타서 벗겨질 만큼 심한 편이다. 또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오그라들고 귀뚜라미 울음소리(?鳴·실명)가 점차 크게 들린다’거나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말도 있다. 처서(處暑)·소서(小暑)·대서(大暑)는 다같이 ‘더울 서(暑)’를 쓰지만 앞 글자에 따라 해석은 확연히 다르다. 처서는 작은 더위와 큰 더위라는 의미의 소서, 대서와는 달리 ‘비로소 더위가 물러감’을 의미하는 단어다. 처서(處暑)는 명사이지만 동사로는 ‘더위를 처리하다’, ‘더위를 가라앉히다’, ‘이제부터 더위가 물러가다’ 등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처사(處士)는 ‘顯考處士金海金公之位’처럼 대부분 죽은 사람의 위패의 글로 쓰인다. 호칭이나 본래의 뜻은 중국 유교에서 생겨났고, 도덕과 학문이 뛰어나면서도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황제나 왕이 내리는 시호였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국과 다르게 나타난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삼가 《문헌통고(文獻通考)》를 살펴보니… 무릇 성복이란 것은 관작이 있는 이는 복두(?頭)·공복(公服)·대(帶)·화(靴)·홀(笏)을 갖추고, 진사(進士)는 복두와 난삼대(欄衫帶)를 착용하며, 처사(處士)는 복두와 조삼대(?衫帶)를 착용하며, 벼슬이 없는 자는 통모자(通帽子)와 삼대(?帶)를 착용하며, 또 이것도 갖출 수 없다면 혹은 심의(深衣)나 양삼(?衫)을 쓴다. 하였습니다.……”(세종10년·1428, 11월 16일-예조에서 관작이 있는 자의 시향 복장에 대해서 아뢰다)

“그가 이미 군부에게도 이와 같이 하였다면 일개 처사(處士)인 최영경에 대해서야 무엇을 돌아보며 아꼈겠습니까.(彼於君父, 旣如此, 則於永慶一處士, 夫何所顧惜哉?)(선조35년·1602) 3월 17일-대사헌 정인홍이 올린 차자)

“과거에 나가지 않고 벼슬하지 않은 채 죽은 학생 신소(申韶)를 그가 죽었을 때에 유현(儒賢) 송명흠(宋明欽)·김원행(金元行) 같은 이가 그 집으로 하여금 신주(神主)에 처사(處士)로 쓰게 하였고…….(순조21년·1821, 3월 2일-시임·원임 대신들이 신소의 증직교지에 대하여 말하다) 예를 든 3건의 사례는 종전에 ‘일정한 곳에 거주지를 정한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선비’라고 알고 있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진사 아래 처사로 나타난다. 정리하면, 숨은 선비가 아닌 ‘처음’ 혹은 ‘비로소’ 벼슬에 나아간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처녀(處女)는 처남(處男)과 함께 명사다. 동사로는 ‘비로소 여자가 되다’와 ‘비로소 남자가 되다’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 아버지는 나에게 꽃을 안겨 주시고/ 어머니는 같은 여자가 되었다고/ 너무나 좋아하셔…(이하 생략). 진미령의 노래 <내가 난생처음 여자가 되던 날>의 시작부분 가사다. 이때 ‘내가 난생처음 여자가 되던 날’은 바로 초경이 있던 날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를 '처녀(處女)'라 부른다. 이제 임신이 가능한 몸 즉 여자인 것이다. 처녀라는 호칭의 의미가 이성과의 접촉 여부와 무관함을 알 수 있다.

처서(處暑)·처사(處士)·처녀(處女)에서 사용된 처(處)는 ‘곳 처’보다 ‘비로소’의 의미로 쓰였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 ‘화해와 용서 그리고 관용’으로 답습된 처용의 이미지는 시의적으로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느낀다. 처용은 처음부터 ‘변화와 창조 그리고 혁신’의 아이콘으로 접근함이 마땅할 것이다. 처용은 미물인 용이 비로소 사람으로 바뀌면서 붙여진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용이 사람이 될 수 있나?’는 물음은 불교 방편설로 ‘용녀성불설’에서 찾을 수 있다. 처용 이름풀이 연구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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