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이젠 변해야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이젠 변해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3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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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발생한 진도 5.8의 강진으로 저녁식사 자리에서 공포감이 엄습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또 10월에는 태화강 인근 지역과 태화시장을 강타하고 지나간 차바 태풍으로 인하여 많은 주민들이 남몰래 눈물 흘리던 현장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 연구원들도 대한화학회 발표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태화강 인근 지역으로 나가 주민들과 함께 복구작업에 동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불과 1년 전 일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뇌 구조는 까마귀 고기를 먹은 양 또다시 안전불감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단지를 가보면 배관들이 이리저리 얽힌 채 위험천만하게 방치돼 있다. 자칫 트럭이 들이박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땅 속에 숨어 있는 배관들은 더 위험하다. 지상에 나와 있는 배관은 눈에 보이지만 땅 속에 있는 배관들은 피할 수가 없다. 실제로 땅 속 배관 때문에 생기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산업단지를 사람으로 비유하면 크고 작은 배관들은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혈관이 온몸 구석구석에 피와 영양분, 산소를 날라주는 것처럼 배관들은 산업단지 곳곳에 스팀과 가스, 화학물질 등을 공급해준다. 이런 배관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의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산업단지의 기능 마비는 물론 엄청난 사고로 이어진다. 특히 산단 조성 초기부터 지난 수십 년간 입주업체들이 앞 다퉈 매설한 지하관로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지 오래다.

지하매설 배관은 지상과 달리 문제가 발생할 경우 손상 정도를 파악하기 어렵고 시간도 많이 소비된다. 또 정밀진단에도 한계가 있다. 산업단지 원료 이송라인은 회사마다 개별 관리하기 때문에 지하도로 굴착 시 매설위치 파악이 쉽지 않아 큰 어려움이 있다. 결국 지하관로는 한번 땅 속에 매설하면 눈에 잘 띄지 않아 지도점검도 쉽게 피할 수 있고 유지보수 관리비도 절약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이 이처럼 사고 가능성을 키워왔다. 사고가 터진 다음에 안전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찢어진 상처에 반창고 하나 더 붙이는 것과 다름없다. 유비무환이 최선이다.

안전불감증과 안보불감증 얘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까마귀가 등장한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까마귀에 관한 속담인데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다. 이처럼 까마귀는 흉조로 취급받고 있다. 같은 까마귀과 조류인 까치는 길조로 여기니 까마귀 신세가 참 불쌍하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바로 발이 세 개인 상상의 까마귀, ‘삼족오(三足烏)’에 대한 이야기였다. 삼족오는 고구려의 상징이자 태양의 상징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자주 등장하고 추앙받은 것을 보면 지금 까마귀가 처한 상황과는 아주 다르다. 옛날에는 까마귀를 귀하게 여기며 지금처럼 흉조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까치는 검은색과 흰색의 대조대비가 명확하여 눈에 잘 들어오고 살짝 귀여운 느낌도 있다. 반면 까마귀가 흉조 취급을 받는 이유는 검은 털 색깔이나 울음소리 때문이다. 하지만 까마귀는 기억과 인지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특정 사람의 얼굴사진을 붙인 상자에 먹이를 넣고 다른 상자에는 먹이를 안 넣는 식으로 ‘먹이 보상’ 훈련을 했더니, 놀랍게도 남자와 여자를 정확히 인지하고 구별했으며 코와 입을 가렸을 때도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봤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한 기억력을 알아보기 위해 세모와 네모 등 도형을 학습시킨 후 일정 시간이 지나 다시 확인하는 실험을 한 결과, 여러 도형 중에서 먹이가 들어있는 상자에 붙인 세모를 부리로 꼭꼭 찍어 골랐다고 한다. 까마귀는 무려 1년간 학습한 도형을 기억하더란다.

적어도 기억력이 나쁜 사람에게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고 말하는 것은 까마귀에게 대단한 실례임에 틀림없다. 까마귀는 단순히 상대방을 잘 알아보고 기억력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소리로 대화하기도 하고 먹이를 먹을 때면 “이 녀석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머리를 잘 쓴다. 오랜 기간 사람들과 함께 살아 온 똑똑한 새, 이젠 까마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앞으론 좋은 의미로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가 사용되길 희망한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RUPI 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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