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얘기, 꼭 책으로 내고 싶어”
“빨치산 얘기, 꼭 책으로 내고 싶어”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08.2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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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써내려간 소금이야기의 작가 배성동씨
광복절 다음날 저녁나절, 신정시장이 내려다보이는 남구 울들병원 9층 갤러리로 진지한 표정의 객군들이 꾸역꾸역 몰려든다. 객석에 빈틈이라곤 별로 없다. 어림잡아 90명은 되지 싶다. 일 끝나기 무섭게 달려와도 ‘지각’ 딱지 떼기는 영 글렀다. ‘소곰 사소, 소곰 안 사는교?’ 시(詩)낭송가들의 작은 공연은 맛도 안 보여준 채 막을 내린다. 이내 다음 무대가 펼쳐진다. 백발 희끗한 촌로 두 분이 깍듯한 보살핌을 받으며 무대로 오른다. 울주군 덕하역 부근 ‘마채 염전’에서 소금을 구워내던 염부 정해수 씨와 ‘울산의 마지막 소금장수’ 윤삼철 씨다. 사회자 원덕순 씨(울산여성신문 대표)와 이날의 주인공 배성동 작가(58)도 뒤따라 무대에 오른다. 배 작가라면 우리나라 소금- 그 문화와 역사를 발로 써내려간 <소금아, 길을 묻는다>의 저자다. 그를 조명하는 출판기념 ‘북 콘서트’는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추풍령 이남 최고의 맛 ‘울산 자염’

“남해안, 서해안, 동해안을 이 잡듯 뒤졌습니다.” 상기된 표정의 배 작가가 말문을 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뜻밖에 찾아준 하객도 제법 그득한데다 허언욱 행정부시장까지 객석 한 자리를 꿰차고 시선집중 모드에 들어가 있었으니….

작가가 말을 이었다. “책 나오기까지 구술(口術)로 도와주신 분이 전국에 여든다섯 분은 될 겁니다.” 사실이 그랬다. 작가는 그 명단을 저서 후미에 족보인양 모셔놓았다. 자신이 일일이 만난 ‘소금의 사람들’이다. 울산의 마채염전을 비롯해 돋질조개섬·명촌대도섬·염포염전과 울산 소금길, 동해안과 남해안·서해안·영남대로 소금길, 그리고 낙동강 소금배 이야기는 모두 이분들의 구술 아니었으면 눈도 못 떴을 것이다.

“울산사람들 먹여 살린 울산의 고대 산업은 소금과 철(鐵)이었습니다.” “추풍령, 죽령 이남 사람 치고 달짝지근한 울산 자염 맛 안 본 사람 아마 없을 겁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삶을 煮’자가 들어가는 ‘자염’이란 ‘달인 소금’, ‘졸인 소금’을 말한다. 바닷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햇볕에 말려서 빚어내는 천일염과는 전혀 딴판인 셈이다.

중간 중간에 선보인 ‘정 선생’과 ‘윤 선생’의 생생한 체험담은 북 콘서트의 신명을 살렸고, 내용을 알차게 채웠다. 소금 한 포대 무게가 60kg이었고(그 이전 ‘가마니’에 담을 땐 80kg), 염도는 바닷물이 5도일 때 소금은 23∼24도였으며, 자염의 맛은 모래와 찰흙이 7대 3 비율로 섞일 때 최고였고, 제염 뒤끝의 ‘울산소금 간수’는 가는 곳마다 짭짤한 이문덩이였으며,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안과는 달리 제염에 필요한 둑을 1m 20cm 높이로 쌓았고, 소금밭 일굴 때 농삿소도 활용했다는 사실은 모두 이분들의 입담이 쏟아낸 뉴스거리들이었다.

“퇴직금 거의 다 소금에 녹였지요”

배 작가는 자신을 소금길로 인도해 준 ‘염부어른’의 부재를 못내 애석해했다. 차동근 선생(1931년생). “요양원 계시던 이 어른이 저한테 오랫동안 얘기해 주십디다. ‘울산 소금은 이렇게 굽는데이’라고. 소금을 일받치게(=일으켜 세우게) 하시고 심지에 불을 붙여주신 제 은사 같은 분입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던 작가가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덕하 마채염전에 계셨던 이분께 책 나오면 꼭 갖다드리려 했는데. 책이 6월에 나오고 7월에 드리려던 참에 그만 하루 이틀 전엔가 돌아가셔서…. ‘XX 똥은 개도 안 먹는다’던 염부, ‘가마쟁이’ 세계로 뛰어든 건 그 어른 영향이 컸습니다.”

감추고 싶었을 개인사도 언뜻언뜻 새 나왔다. “제가 다니면서 하도 골병이 들고 설움도 많이 받아서 사실은 소금을 글로 쓰고 싶지도, 구술한 어른들을 머리에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어요. 돈 되는 일도 아니고 (소금밭은) 이미 공단 속에, 원전 속에, 아파트 속에 다 묻혔는데 그걸 찾아다닌다고…. 제가 받은 퇴직금, 거의 다 소금에 녹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귀동냥에 의하면 배성동 작가가 소금길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5년 전쯤의 일이다. 그것도 스스로 마음이 내켜서가 아니라 괴짜로 소문난 지인의 강권(?)이 빚어낸 촌극 같은 일이었다. ‘소호 할배’란 별명의 이 지인은 ‘뒷감당은 내가 할 테니 시작부터 하라’고 부추겼다. 그 전까지만 해도 배 작가는 병원 사무장, 물리치료사를 거치면서 금전적으로 궁핍 같은 건 ‘궁’자도 모르고 지냈다. ‘소금에 녹여낸 퇴직금’이 얼마나 되는지는 자신만이 알고 있을지 모른다.

10년 발품으로 펴낸 책 <소금아…>

사실 배 작가는 ‘소금 이야기’ 저자이기 이전에 지독한 ‘영남알프스 마니아’였다. “역마살이 끼었는지 영남알프스라면 구석구석 안 뒤져본 데가 없을 겁니다. 오지 탐방 하듯 말입니다.” 그 기간을 그는 줄잡아 20년으로 잡는다. 그런 열정 덕분에 덤으로 따라온 것들이 있었다. 가지산, 신불산 골짜기보다 더 깊고 낙엽 부스러기보다 더 숱한 얘깃거리들이었다.

작가는 이 값진 얘깃거리들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진 않았다. 영남알프스 여기저기에 녹아 있는 호랑이·표범 이야기, 신불산 빨치산 이야기, 소금꾼 이야기가 너무도 아깝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다른 작업에 매달리겠노라 스스로 채찍질을 한다. 금광 속의 원석과도 같은 메모 꾸러미를 원고지에 풀어놓기 시작한 것. 그래서 첫 선을 보인 책이 2012년에 펴낸 <영남알프스 오디세이>였다. 이 작품은 그 해 계간지 <동리목월>의 등단 작품으로 기록된다.

이번에 <소금아, 길을 묻는다>를 펴낸 출판사 ‘민속원’은 <영남알프스 오디세이>를 이렇게 소개한다. “산을 이고 사는 민초들의 발자취를 20년간의 발품으로 그려낸 책이며, 2013년에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다.” 또 <소금아, 길을 묻는다>에 대해선 “10년간의 끈질긴 취재 끝에 저술한 책이며, 모래 속에 묻힌 소금꾼들의 족적을 복기시켰다”고 꼬리표를 단다.

소금을 소재로 한 배 작가의 스토리텔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년 전(2014년) 울산발전연구원 부설 울산학센터의 공모에 응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 울산 염부들의 구술을 담아낸 책이 <울산소금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책은 300부 한정 비매품이었고,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야박하다’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소금 이야기’ 제2탄 격인 <소금아, 길을 묻는다>는 그런 배경 속에서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암각화 속 호랑이·표범 꼭 끄집어낼 것”

배 작가가 내세울 만한 취미는 한국산 호랑이와 표범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말도 곧잘 한다. “반구대암각화에 호랑이·표범 그림이 몇인 줄 아십니까? 자그마치 열한 마리나 됩니다. 반구대가 호랑이의 최적 서식지였던 셈이지요. 이 녀석들을 바위그림에서 뛰쳐나오게 만드는 일, 그게 제 취미이자 꼭 해내고 싶은 일입니다.”

그동안 한국산(시베리아산) 호랑이·표범 냄새를 맡겠답시고 누빈 나라가 중국과 러시아, 일본을 합쳐 5개국에다 그 횟수는 7차례나 된다. 일본 ‘야마구치(山口)박물관’을 찾았던 것은 1918년 함경도에서 잡힌 대호(大虎)의 박제를 꼭 한 번 보고 싶어서였다. 한 번은 (배 작가는 국회의원선거가 있던 해 1월로 기억한다) KBS 탐사 팀을 따라 러시아 연해주를 누빈 적도 있었다. 앞세운 타이틀은 ‘조선 호랑이 왕국 왜 사라졌나?”. 그러나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숲에 들어가면 공포심 때문에 가다가도 뒤를 돌아보게 됩디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북한지역 탐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 얼마 전 한국산 호랑이가 북한에서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고, 남한에서는 영남알프스에서 백두대간까지 이 잡듯 뒤졌지만 터럭 하나 발견할 수 없었으니 그 안타까움은 오죽했으랴.

하지만 한국산 맹수들을 향한 그의 야심과 발길에는 마침표가 없다. 올해 안에 두 차례나 더 국경지대를 샅샅이 훑을 것이다. 한국산 호랑이·표범의 흔적을 꼭 찾아내기 위하여….

許부시장 “문화·역사콘텐츠 발굴에 감사”

배성동 작가에겐 안으로만 꼭꼭 눌러 감춰둔 포부가 있다. 영남알프스 빨치산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는 일이다. 그 작업을 위해 오랜 시간을 축내 가며 생존 주민도 만나고 토벌군도 만났다. 생생한 얘깃거리들이 바깥세상을 보고 싶다고 수도 없이 보채지만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망설이기만 할 뿐이다.

“쓰기가 쉽지 않지요. 무엇보다 남북관계가 안 좋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지역 정서도 문제고요. 빨치산 얘기를 꺼냈다간 십중팔구 ‘빨갱이’ 취급 받던 세상 아닙니까? ‘이관술 스토리’부터 무수히 발품을 팔며 채록해둔 숨은 얘기들이 산더미 로 쌓여 있지만 아직은 엄두가 안 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면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책으로 펴낼 참이다. 역사의 기록이니까.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아직은 안개속이다.

어쩌면 호랑이와 표범에 관한 책이 먼저 나올지도 모른다. 탐사 횟수를 늘려가는 것도 그런 기대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건 배 작가는 <소금아, 길을 묻는다> 북 콘서트를 계기로 희망의 빛을 보았다. 허언욱 부시장의 격려가 가시광선으로 작용한 덕분도 없진 않다. 북 콘서트가 있던 날 허 부시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배 작가는 어쩌면 우리 시가 해야 할 역사·문화 자산에 대한 조사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왔으니 정말 고마운 분입니다. 그 유명한 안동 간고등어 맛도 울산 소금에서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북구 양정·염포동 도시재생사업의 콘텐츠를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했는데 이제야 해답을 찾은 것 같은데 염포(鹽浦) 즉 ‘소금포’에 초점을 맞추라고 주문해 놓겠습니다.”

객사한 소금장수 고혼 달랜 춤꾼 현숙희

이날 북 콘서트에는 배 작가의 청으로 울산의 춤꾼 현숙희 씨가 ‘소금길’을 주제로 창작무를 선보였다. “소금길이 생명길이란 말씀이 정말 제 마음에 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춤을 청했던 배 작가가 가슴 아픈 뒷얘기를 전했다. “소금장수가 길에서 죽으면 돌무덤에 묻어주었습니다. 성에 지명을 딴 묘비도 세워주고…. ‘문 울산’이란 묘비를 태백산맥에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소금길이 바로 생명길이구나 하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길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좀 달래주십사 하는 뜻에서 현 선생에게 춤을 부탁드렸던 겁니다.”

피날레는 시낭송가 박순희 씨가 장식했다. “소금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울산에 전해오는 말 중에 소금 내려간다는 말은 도심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던 소금밭을 일상처럼 드나들었다는 얘기다. 소금은 이제 친환경이다. 철새는 날아가면 그만이지만 학은 길들이면 텃새가 된다.

1천년의 역사를 지닌 프랑스 ‘게랑드 염전’은 주위의 환경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자신들의 소금문화를 알리고 있다. 울산에서 소금꽃이 피는 날, 걸으면서 볼 수 있는 염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태화강 하구에서 솔트시티의 강을 걷고 염전이 있던 갯벌에 세워진 소금전시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착한 소금, 하얀 소금, 울산 소금! 이 땅에 소금꽃이 피는 날, 만나자!”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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