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닭·바지락이 공존하는 태화강 하구
물닭·바지락이 공존하는 태화강 하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2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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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서식하는 조류에 ‘물닭’이 있다. 이름이 생소하겠지만 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닭은 아니다. 이름은 사물을 바탕으로 연상시켜 짓는다.

예를 들면 꿩과 물꿩(아귀와 다름), 까치와 물까치, 까마귀와 물까마귀, 개와 물개, 산달(山獺)과 수달(水獺), 독수리와 물수리, 사자와 바다사자, 코끼리와 바다코끼리 같은 것들이다. 물닭은 꿩과인 닭과는 달리 뜸부기과에 속하는 물새다.

물닭은 겨울철새이지만 올해 경북 경산 진못 연밭의 한 어미 물닭은 북으로 가지 않고 여름철새와 함께 번식에 성공해 새끼를 키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인터넷에 소개되기도 했다.

지난 1월 30일, 울산 제1부두 앞 돋질로에서 로드킬(road kill)당한 물닭 5마리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보도를 접한 관계자는 혹시 고병원성 AI 때문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다행히 먹이를 찾다가 자동차에 치인 것으로 결론이 나 걱정하던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때마침 2월에 울산광역시 승격 20주년 기념 ‘아시아 버드 페어(Asia Bird Fair=ABF)’가 예정되어 있어 긴장은 더 심했다. ABF 집행위원회는 2016년 11월 26일 전남 해남 농가에서 최초로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터라 고민 끝에 개최시기를 11월로 연기했다.

물닭의 로드킬 사례는 드물다. 자동차도로에서 치어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새로운 로드킬 사례의 빅데이터 단초를 울산이 확보했다는 점에서는 귀중한 자료다.

또 이번 사례는 물닭이 자동차도로까지 나오게 민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2016년 10월 5일 울산을 강타한 제18호 태풍 차바의 영향과 무관치 않겠다는 가설을 염두에 두고 조사에 나섰다.

차바는 울산에 266.0mm의 비를 내렸다. 엄청난 강우로 인한 유량과 유속은 기수역(=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의 돌에 붙어있던 파래, 김 같은 해조류를 말끔히 제거해 버렸다. 물닭의 주요 먹이 중 하나인 해조류가 씻겨 내려간 때문인지 지난 1월 물닭의 수는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동물은 의식주(衣食住) 중에 먹는 것을 제일로 친다. 로드킬 당한 물닭도 해조류가 사라진 먹이터를 벗어나 곡물운반차량에서 떨어진 낙곡을 찾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닭은 가끔 초본류 먹잇감을 찾으려 뭍으로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차제에 그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보면, 물닭은 몸 전체가 검고 뭉툭하면서도 집에서 키우는 닭처럼 생겼다. 왜 ‘물닭’이라고 부르는지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이마의 흰색 액판은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부리는 흰색이고 수중에 잠긴 다리는 오렌지색이다. 발의 물갈퀴는 오리와는 달리 연결되어 있지 않고 발가락마다 넓적한 돌기가 있어 폈다 오므렸다 할 수 있다. 이를 ‘물갈퀴’라 하지 않고 ‘판족(板足)’이라 말한다.

물닭은 체구에 비해 날개가 발달되지 못해 쉽게 날아오르지 못한다. 위험이 닥쳐도 수면 위에서 한참동안 날갯짓을 하며 푸드덕거리다가 간신히 날아오른다.

이 때문에 사방이 탁 트인 공간에서 쉽게 관찰된다. 물닭이 먹잇감이 풍부하고 생태환경이 좋은 남구지역 태화강 하류에서 많이 관찰되는 이유다. 자맥질에도 능해 깊은 물속까지 들어가 먹이를 물고 나온다.

물닭이 좋아하는 가시파래는 미네랄, 노화방지성분 시놀, 요오드 등이 다량 함유되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동맥경화, 심혈관질환에도 효능이 있어 음식으로도 즐겨 먹는다. 가시파래는 쌉쌀하면서도 달달하고 향이 좋아 지역에 따라 ‘감태(甘苔)’라고도 부른다.

올해 태화강 하구는 해조류가 풍년이다. 올겨울에는 많은 수의 물닭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편에는 공교롭게도 146ha 정도의 넓은 모래밭이 물속에 잠겨있다. 바지락의 집단 서식지다. 태화강은 전국 바지락 종패(씨조개)의 30%를 생산하는 종패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과거 태화강 하구에 형성된 하중도(河中島)를 ‘조개섬’으로 부른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과거 태화강 하구가 바지락이 지속적으로 자랄 수 있었던 환경이었음을 의미한다.

바지락은 그물을 끌어당기는 ‘예망(曳網)’ 식으로 채취한다. 바지락 생산에 참여한 어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7년까지는 많은 양을 생산했다. 그 후 생태환경 악화로 바지락이 자취를 감추었다. 바지락 채취가 중단된 지 27년 만인 2004년에 다시 채취하게 됐다.

풍부한 해조류의 번식이 오히려 바지락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가시파래의 경우다. 적당히 자란 가시파래는 물고기의 은신처가 되고 바지락에게는 그늘이 되어 폐사를 막는 등 생태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지나치게 우거진 파래는 바닷물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햇빛을 차단시켜 바지락에 필요한 산소량을 줄어들게 하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긍정·부정의 두 가지 요소는 왕성하게 자란 해조류를 솎아줌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명촌교 위·아래 지역은 매년 울산을 찾는 겨울 수조류의 약 90%가 서식하는 곳이다. 바다비오리, 혹부리오리, 청머리오리, 호사비오리 등 귀한 새들이 관찰된다. 물닭과 바지락이 공존하고 상생하는 태화강 하구는 올해도 많은 철새 관광객이 찾는 태화(太和)의 명소로 거듭날 것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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