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지정(首丘之情)과 고향세
수구지정(首丘之情)과 고향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2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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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들은 사자성어에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다. 죽을 때라도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동의어에 호사수구(狐死首丘), 수구지정(首丘之情)이란 말도 있다. ‘머리를 구릉을 향해 두는 마음’, 즉 여우[狐]가 죽을 때[死] 머리[首]를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丘]으로 돌린다는 뜻이고 보니 새삼 고개가 숙여짐을 느낀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수구지정에 호소해서 매기는 세금이 있는 모양인데 ‘후루사토 납세’라고도 하는 이른바 ‘고향세(故鄕稅)’다. 26일 저녁 KBS1 ‘특파원보고 세계는 지금’을 보았더니, 지금 일본에선 ‘고향세’ 열풍이 대단하단다. 도시민이 자신의 고향이나 원하는 지역에 기부하면 주민세 일부를 공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지난해 일본의 고향세 기부금 총액은 전년대비 72%나 불어나 2천844억900만 엔(약 2조 8천억 원)에 달했다. ‘고향세’가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2천 엔(약 2만 원)을 기부하면 지역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KBS 특파원은 고향세로 활력을 되찾은 일본 농촌의 모습을 취재했다. 고향세가 지역 경제를 살리고 시골의 작은 학교까지 변화시킨 본보기 사례를 전했다. 고향세의 답례품으로 보낸 망고가 기부자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주문이 80%나 늘었다는 가고시마 현의 망고농장주 야스다 씨, 그리고 고향세 덕분에 교실마다 선풍기가 돌아가고 학생들이 더 이상 망가진 책상에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오사키 중학교가 전파를 탔다. 고향세란 납세자가 고향이나 지난날 거주지의 지자체에 일정 몫을 보내는 후원 성격의 기부금’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2009년도에 비슷한 성격의 입법이 추진되긴 했으나 빛을 보진 못했다.

이러한 고향세가 최근 대한민국 전역을 뒤흔들 조짐이 엿보인다. 이 사안이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인 탓도 있다. 어쨌거나 국민들의 반향은 매우 우호적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덩달아 입법 채비에 나서는 모양새다. 김광림 의원(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 경북 안동)이 대표발의한 ‘고향기부금법’을 비롯해 최근 1년 사이 유사 법률안이 최소 6건이나 발의돼 있는 상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정보통계’가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그랬더니 ‘적극찬성’ 19.0%, ‘찬성’ 59.3%로 나타났다. 국민 78.3%가 “OK” 반응을 보인 셈이다. ‘기부할 곳’으로는 ‘태어나고 자란 곳’이 55.0%, ‘현 거주지’가 26.6%였고, 기부금 액수는 6~10만 원이 33.8%로 가장 높았다. 또 답례품은 65.8%가 ‘지역 특산품’을 원한다고 응답했다. 김광림 의원은 안동MBC 인터뷰에서 “8년 전(2008년)에 이 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지난해 고향세로만 우리 돈으로 2조 8천억 원을 걷었다”면서 “중앙-지방정부 사이에 세원을 뺏어간다는 등의 갈등 소지도 없어 법률안 통과가 무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북일보의 한 칼럼니스트는 8월 7일자 경제칼럼-’호사수구, 그리고 고향세’-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농업계의 숙원사업이기도 한 고향세 도입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고향세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세수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수도권 지자체에 대한 설득과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AI와 쌀값 하락, 극심한 가뭄 끝의 폭우피해까지 가뜩이나 우울한 요즈음, 침체된 농촌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고향세’가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반대 여론보다 찬성 여론이 높고, 여야나 중앙-지방정부 간 갈등 소지도 없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도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수구지정(首丘之情)이 고향세(故鄕稅)를 갈망하는 것 같아 한 번 짚어 보았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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