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작가 권비영의 덕혜옹주를 읽고
울산작가 권비영의 덕혜옹주를 읽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2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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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는 고종황제가 환갑이 되던 1912년 5월 25일, 막내딸로 태어난다. 국운이 다해가던 조선은 끝내 일제에게 나라를 짓밟히고, 고종은 ‘헤이그 밀사 사건’을 계기로 아들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곤 만다. ‘을미 국모시해 사건’으로 왕비(명성황후)를 일본 칼잡이들에게 빼앗긴 고종은 오직 막내딸에게만 사랑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늘 불안했다. 덕혜도 언제 영친왕처럼 일본에 볼모로 잡혀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갑자기 승하하셨다. 어젯밤까지도 등에 업어주시던 자애로운 아바마마의 죽음을 덕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엊저녁에 감주를 드셨고, 왜놈들이 나인들을 매수해 그 속에 독을 탔다는 말이 궁중에 떠돌았다.

국장은 의문이 풀리지도 않은 채 일본식 제의로 치러졌다. 덕혜의 눈은 분노로 가득했다.

총독부는 ‘왕족은 일본식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구실로 나이 13살인 덕혜를 일본으로 유학 보낸다. 일본 황실의 여자 이방자 여사와 결혼한 이복오빠 영친왕이 일본 육사에 다니던 무렵이었다. 덕혜는 영친왕의 보살핌 속에 일본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다. 조선의 황녀로 태어나 황제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지내던 그녀는 어느새 일본 또래들에게 ‘조센징’이라고 놀림을 받는 신세가 된다. 갑자기 뒤바뀐 환경은 그녀를 혼란 속으로 몰아간다. 학교생활은 지옥의 되풀이였다.

덕혜는 아버지 고종과 큰어머니 명성황후가 왜놈들의 음모로 살해됐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일본에서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 고종과 어머니 귀인양씨를 그리며 보낸 한 많은 세월이었다.

어머니와의 재회는 몇 년 후 오빠 순종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영친왕 내외와 함께 귀국해서 잠깐 머물 때 만난 게 마지막이었다.

덕혜도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어머니 양씨는 딸의 결혼이 자신도 몰래 추진되고 있음을 알고는 몹시 괴로워한다. 유방암을 앓은 적 있는 양씨는 딸의 결혼문제까지 겹치면서 심한 가슴앓이를 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덕혜는 비보를 듣고 바로 귀국하지만 일본은 그들의 법도를 내세워 옹주의 복상을 금지시킨다. 귀인양씨가 왕족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덕혜는 외동딸이건만 상복도 입지 못한 채 상주가 된 자신을 스스로 한탄한다.

덕혜는 일본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대마도 도주의 아들 다케유시와 강제로 연을 맺는다. 첫날밤 덕혜는 누워있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조선의 황녀가 왜놈의 아내가 된 사실에 눈물이 저도 몰래 볼을 타고 흘렀다. 덕혜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흐느꼈다.

신랑은 속이 깊어 처음엔 이해심이 많았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힐 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지나치게 영민한 덕혜에게도 적당한 타협은 허락되지 않았다. 부부의 갈등 속에서도 딸 정혜는 태어난다. 정혜는 여느 아이들처럼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만 초등학생 때부터는 엄마와의 갈등을 조금씩 키워 간다. 조선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놀림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혜는 삐뚤어진 사춘기를 보낸다.

덕혜의 남편 다케유시의 집안은 하녀를 거느릴 정도로 여유로웠다. 하지만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하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나라경제도 가정경제도 똑같이 처참했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자 다케유시는 하녀도 집도 모조리 처분하고 조그만 집으로 이사한다. 그 무렵 덕혜는 딸과의 갈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도 몰래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딸은 끝내 엄마를 찾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다케유시가 재혼을 하면서 덕혜도 그와의 인연을 끊는다.

고종의 막내딸이면서도 볼모로 잡혀가 겪어야 했던 37년간의 비참한 생활, 강제결혼, 15년간의 정신병원 감금, 하나뿐인 딸의 자살, 조국의 외면, 조선 최후의 황녀였지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여자…. 그녀를 기억하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그녀를 따르는 이들이 이승만정부에 귀환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것은 왕정복고를 두려워한 당시 정부의 거절뿐이었다. 귀환은 5·16 군사정부 때 이루어진다. 박정희가 물었다.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요?” “조선의 마지막 황녀입니다.” 덕혜는 1962년 고국으로 돌아와 창덕궁 낙선재에서 이방자 여사와 함께 여생을 보내다 1989년 4월 21일 봄날, 77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다. 울산이 낳은 작가 권비영은 그녀의 죽음을 이렇게 묘사한다.

<꿈길이 꽃길이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날이었다. 덕혜의 입가에 생애 처음 평안한 미소가 고였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났지만 황녀로 살지 못했던 여인, 누구보다 귀한 존재였지만 모두가 외면했던 그 여인은 그날 영원한 자유를 향해 먼 길을 떠났다.>

강걸수 수필가, 전 울산시 북구 송정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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