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중단여부, 국민투표로!
신고리 5·6호기 중단여부, 국민투표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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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100일이 지나면서 과거 정부와는 다른 정책들이 여럿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남북대화 적극추진, 인천공항 비정규직 연내 100% 정규직 전환, 사드 배치의 불투명한 지연, 전교조 합법화, 공무원 과다증원, 법인세 인상, 4대강 보 개방 등 다 열거하기엔 지면이 부족하다.

이 중 가장 혁명적 정책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탈원전 선언’이다. 다른 어떤 정책보다 급진적인 이슈였다. 좋게 이야기하면 ‘에너지 혁명’을 하겠다는 것이고, 좀 더 넓게 이야기하면 우리의 경제구조는 물론 일상의 생활방식까지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탈원전 선언은 과거 100년 전 1917년 레닌이 러시아에서 황제체제(핵에너지)를 종식시키고 프롤레타리아(재생에너지)가 주인이 되는 볼셰비키혁명을 이루겠다고 선언한 것과도 비견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존의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에너지가 이산화탄소(CO2)를 과도하게 뿜어내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하고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져 이대로 가면 21세기가 끝날 쯤에는 종말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작년 울산 중구를 비롯해 많은 지역들이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겪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인한 예측불허의 기상이변으로 보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산업국가들의 경제를 비롯한 세계경제는 지속적으로 팽창하기에 그만큼 에너지의 요구도 많아지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고 전세계 에너지의 70% 이상을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에너지가 담당하고 있다. 원전 핵에너지가 사고의 위험이 높지만 여전히 주요 산업국에서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가 이산화탄소 배출 제로에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후유증을 고려한다면 마냥 원전에너지에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CO2도 줄이고 핵사고의 위험도 덜 수 있는 에너지는 없는 것일까. 그 대안이 신재생에너지이다.

신생에너지가 기존의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를 대체하기란 용량과 경제성에서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태이지만 그 기술적 발전 속도와 규모는 이미 독일, 영국 등 서유럽 선진국에서 놀라우리만큼 입증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원전이 아니라 신생에너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문명사적으로 올바른 방향제시라 본다. 그러나 문제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중단의 선언 과정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전히 훼손시켰고, 국가경제에 막중한 손실을 초래하는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 기간 중 많은 토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신고리 원전 중단 문제를 둘러싸고 한 번도 국민 의견을 묻지 않았다. 신고리 5·6호기의 일시중단으로 이미 혈세 2조원이 낭비되었다는 지적이 뒤따르면서 과학계를 비롯한 핵전문가 그룹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여기서 원전 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신고리 원전 공사가 상당히 진척되었으므로 이것을 중단하면 이미 쏟아 부은 비용이 낭비이기에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그렇게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설사 완공이 되었다 하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철회를 주장한다면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대의적 민주주의’이자 ‘절차적 민주주의’이다.

1978년 11월 5일, 오스트리아는 완공된 츠벤텐도르프 원전의 가동 개시 여부 및 원전 추가 건설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찬성 157만6천839표, 반대 160만6천308표로 반대 의견이 50.47%로 나타나 불과 3만표 차이로 원전 가동 및 추가건설에 제동이 걸렸다. 수도 비엔나에서 북서쪽으로 25km쯤 떨어져 있는 츠벤텐도르프 원전은 당시 계획된 6개 원전 중 최초의 것으로 약 50억 실링(3천500억원)의 비용과 6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978년에 완공되었지만 끝내 폐기되고 말았다.

세계 2차 대전 종료 이후 오스트리아는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수력발전과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부족한 부분을 첨단과학기술의 산물인 원전으로 충당키로 하고 1971년 원전 건설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변화가 나타났다. 경제발전을 최우선시하던 사민당이 원전 건설공사를 본격 추진 중이던 1974년부터 원전의 위험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과학자와 환경운동가를 중심으로 반핵(反核) 운동이 조용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작은 반핵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오스트리아 정부가 원전 건설을 옹호하는 홍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자 무관심층이 이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원전 건설은 오히려 핫이슈가 되고 말았다. 수년간 각종 언론과 시민단체, 정당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친 끝에 1978년 6월, 집권 사민당 크라이스키 수상은 반대 결과가 나오면 자진사퇴하겠다며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였다.

오스트리아는 현재까지도 원전이 없다. 부족한 전기는 스위스와 체코 등 이웃나라, 특히 원전이 있는 스위스에서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수입해서 쓰고 있다. 유럽은 여러 나라가 붙어있어 전기가 부족하면 수입하기도 수월하다. 반면 사면으로 갇혀있는 한국은 갑자기 전기가 부족해지면 그 부족분을 어디서 채울 것인가. 현 정부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도 있는 탈(脫)원전과 신고리 5·6기 건설 중단 여부를 공론화위원회를 통한 작위적 결정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처럼 국민투표에 붙여 결정하기 바란다. 민주적 절차를 밟는 것이 나라다운 나라의 첫걸음이라 보기 때문이다.

임현철 울산광역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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