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 칼럼] 단합잔치로서의 제사
[박정학 칼럼] 단합잔치로서의 제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16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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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후 우리나라에는 ‘야시장(夜市場))’이라는 것이 많이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밤에 열리는 시장’이니 밤에 사람들을 끌어 모아 장사를 하는 장터라는 의미지만, 대표적인 행사였던 1980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국풍81’에서 느껴지는 것은 장터가 아니라 ‘신바람을 불러내는 잔치’였다. 그리고 이 야시장이 그때 누가 어떤 의도로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오래 전부터 해왔던, 전래의 고유 생활문화를 재현한 것이었다.

천부경을 소개할 때도 말했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환웅천왕이 태백산에 내려와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열었다는 ‘신시(神市)’다. ‘신시(神市)’가 나라이름이기도 하지만 ‘市’라는 의미로 보면 시장, 즉 ‘장터’였고, 술을 돌리고, 놀이를 구경한 후에 천부경을 강의한 ‘잔치’였으며, 제천을 했다고 하니 제사의 원형, 그리고 밤에 했다니 ‘야시장의 원조’로도 볼 수 있다. 이 ‘야시장’은 단순한 장사 터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신바람을 불러일으켜 서로의 원한을 풀고 하나 되게 만드는 ‘잔치’, 즉 여러 사람을 모아 따로따로였던 ‘너’와 ‘나’를 ‘우리’가 되게 하는 행사였던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부활되면서 각 지방마다 옛날부터 있던 이런 잔치들을 재현하여 ??문화제, ??축제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페스티벌’이라는 영어를 ‘제(祭)’로 번역한 일본식 용어이지만, 우리 겨레가 예부터 ‘잔치’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울산의 경우 암각화와 연결되는 고래축제를 비롯해서 울산시 승격과 관련되는 처용문화제, 간절곶 해맞이축제, 옹기축제, 벚꽃축제, 태화강봄꽃대향연, 울산쇠부리축제, 달집축제, 울산문화제 등 지방·마을별로 크고 작은 잔치들이 일 년 내내 열린다. 역사 속에서 천제로부터 동제로 이어졌던 ‘우리 만드는 행사’였던 ‘잔치’가 우리의 생활문화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잔치에 가면 누구나 마음이 들뜬다.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사람은 신바람이 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지난 2002년 월드컵 축구 때 보여준 700만 거리응원과 4강을 이루어내던 선수와 선랑(仙郞) 붉은악마 응원단들이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것이 그 실례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별로도 제사를 지낸다. 조상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제(忌祭)와 오래된 조상들의 무덤에 가서 문중이 함께 지내는 시제(時祭)가 있다. 일부 종교에서는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하여 배척하기도 하지만, 제사가 앞에서 보았듯이 화합을 위한 잔치라는 것은 나라 제사나 가정 제사나 차이가 없다.

우리 집 제사로 설명해보자. 우리 형제는 7남매인데, 지금은 경주, 부산, 서울,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1년에 한 번도 만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명절 제사 때는 또 딸들이 모이기가 어렵다. 특히 장남인 형이 미국에 살고 있으므로 거기서 제사를 지낸다면 다른 형제들이 갈 수가 없다. 그래도 처음에는 장남이 미국에서 제사를 지냈으나 ‘아무래도 단합잔치라는 근본 취지에 어긋나므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얼마 후부터 경주에 있는 3남이 15년 가까이 제사를 모셨다. 그러다 전방으로 다니던 내가 전역을 한 후 20년 가까이 차남인 내가 모시면서,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수(祭需)를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라도 부담시킨다. 그리고 조상님들께 아뢰는 축문은 과거의 유교 형식이 아니라 완전히 우리나라 ‘차례’ 식으로 고쳐 그간 있었던 형제들 집의 동정을 보고한다. 그리고 그 내용과 사진을 전체 형제들에게 인터넷과 밴드를 통해 전파한다.

‘단합잔치’라고 하는 제사의 근본 목적에 충실함으로써 우리 형제들과 그 자식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우리’라는 가까운 관계임을 잊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 때 보지 못하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봄 가을, 연 2회는 별도의 형제모임을 하여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제사는 이처럼 신바람을 일으켜 ‘우리 됨’을 두텁게 하는 ‘단합잔치’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前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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