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 태화강 동굴피아 300m
‘강남스타일’ 태화강 동굴피아 300m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1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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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穴)이나 굴(窟)은 선사시대에 주거지로 활용되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숲속의 굴은 동물의 서식지나 은신처로 이용된다. ‘동굴’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이 거꾸로 매달린 박쥐다. 동굴의 생태환경을 박쥐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동굴은 축축하여 습도가 높고 빛이 차단되어 채소류와 젓갈류의 숙성·저장창고로 많이 이용된다. 단군신화에서 굴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 호랑이와 곰의 인내를 시험한 장소였다.

“어릴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놀러간 기억이 새롭습니다. 나도 손녀를 데리고 찾았죠.” “아따, 그때 파전에 막걸리 묵고…, 그때 그 동굴이 최고였지…” “선생님 저 어릴 땐 친구들과 동굴에 들어가 가재를 잡아 구워먹었어요.” 남산 동굴을 기억하는 울산 사람들의 회고담이다.

동굴 속은 여름철이면 바깥보다 온도가 낮아 시원하다. 반대로 겨울철이면 바깥보다 온도가 높아 따스함을 느낀다. 울산 남구 남산(일명 삼호산)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군수물자 창고로 쓰였다고 하는 60m, 42m, 62m, 16m 길이의 동굴 4개가 있다. 이 동굴 일부는 1960년대부터 약 20년간 주막으로 이용되었다. 한번에 1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주막에는 막걸리와 파전을 즐기는 주당들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65세가 넘는 울산토박이 주당들은 그 시절의 추억을 자랑삼아 되씹기도 한다.

이 동굴은 한동안 동네 어린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도가 낮아 출입이 금지된 후 울산시민들은 35년간 이 동굴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다. 그러던 차에 남구청이 동굴의 재활용 가치에 눈을 떴다. 폐쇄된 이후 버려지다시피 한 동굴을 예리한 수리부엉이의 눈으로 살펴본 남구는 재활용 문제를 놓고 연구와 고민을 거듭했다. 2015년 8월부터는 동굴 내부 정비, 연결통로박스 설치, 태화강 지하연결로 설치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탄생한 이름이 ‘태화강 동굴피아’였다. 태화강 동굴피아 조성사업은 크게 인공폭포 조성, 동굴 정비, 연결로 설치, 주차장 조성 등 4개 사업으로 나뉜다. 이 사업은 ‘2013년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출입구는 남구 신정동 1540-1번지 크로바아파트 입구에 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동굴피아를 찾는 것은 추억과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60세 이상의 시민은 추억의 장소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할 것이고, 일반시민은 새로 단장했다니 한 번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태화강 동굴피아’는 스토리텔링에서도 재미있을 것 같다. 태화강 동굴피아를 한자어로 바꾸면 ‘太和江 洞窟彼我’가 된다. ‘太和江 同窟彼我’로도 쓸 수가 있다. 두 가지 뜻을 다 살리다 보면 ‘같은 동굴에서는 너와 내가 차별 없이 함께하고(together) 같이하는(with) 대화합(global-harmony)의 흐름이 존재하는 강(river)’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의미부여는 홍보효과로도 직결될 수 있다.

쌀과 보리, 옥수수 등 다양한 재료를 섞고 쪄서 같은 형태(mould)를 거치면 통일적 의미를 지닌 ‘가래떡’으로 변화된다. 태화강 동굴피아를 들어설 때까지는 편견과 오만, 갈등과 반목 등 이기적이고 바위덩어리와도 같았던 저마다의 생각이, 너와 내가 함께하는 300m 길이의 동굴피아를 지나는 동안 태화강처럼 유연하고 유동적인 사고력으로 거듭나는(변화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른다.

동굴피아는 잊혀지고 방치된 동굴에 역사체험, 어드벤처, 스케치 아쿠아리움, 이벤트가 살아있는 공간을 꾸밈으로써 시의적절한 변화의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듣는다. 어찌 보면 남구청 근무자들은 ‘재활용의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발굴하는 데 뛰어난 귀재들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입김은 지역민과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매사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려는 리더의 진취성과 역발상적인 사고력, 지역민과 지역 사랑을 위한 깊은 고뇌와 쉼 없는 노력에서 나왔을 것이 분명하다.

‘울산중심 행복남구’는 하루아침에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리더의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모든 구성원이 함께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가는 것이다. 리더와 구성원의 수고와 노력이 지속될 때 지역민은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된다. 매미와 나비는 껍질(허물)을 제대로 벗어야 날개를 온전히 펼 수 있다. 암수 매미는 날개를 편 다음 큰 울음소리를 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동굴 또한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납득할만한 변화를 겪어야 자연적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앞으로 남구민들이 회식 자리에서 외칠 새로운 건배구호를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가사(呵辭·큰 소리로 하는 선창)로 ‘태화강 동굴피아!’ 하면, ‘300!’이라고 후창하자는 것이다.

행복은 남쪽을 지향한다. 쌀바위에서 시작된 한 방울 맑은 청정수는 남쪽을 향하면서 태화(太和)를 만든다. 언양 남천을 지나고 남산 동굴피아를 감돌아 명촌으로 흐르는 것이다. ‘남향 남대문은 3대 적선의 결과’라는 조상들의 속담은 무심코 지어낸 말이 아니다. 굼벵이가 허물을 벗으면 매미로 탄생하듯 태화강 동굴피아의 탄생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행복은 찾고 실천하는 노력을 따라다닌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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