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 묘책이다(上)
원칙이 묘책이다(上)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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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서 고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영어수업을 전담하는 기간제 교사와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다. 이분은 울산이 고향이 아닐 뿐더러 영어를 전공한 대학도 다른 도시에 위치했다 보니 가족도 없이 혼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학교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또 영어전담 교사여서 수업 전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매일 아침 일찍 출근을 하시곤 했다.

아침에 교문 앞에서 교통지도를 하고 있으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선생님이 바로 그분이었다.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으며 출근하시는 그분을 볼 때마다 나는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복도를 지나는 길에 엿보게 되는 그 선생님의 영어 수업은 항상 ‘열정 가득한 수업’ 그 자체였다. 학교 일이 많은 날에는 늦은 시간까지 일처리를 하다가 잠시 쉬면서 컴퓨터의 네트워크를 확인해 보면 그의 컴퓨터는 거의 대부분 작업 중인 상태로 나타났다.

하루는 하도 궁금해서 “대체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무얼 그렇게 열심히 하시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아이들이 영어수업에 재미를 갖게 하려고 유튜브랑 여기저기서 자료를 다운받아 제작하려고 남아있다”고 대답했고 나는 그 말에 스스로 부끄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또 다른 영어 전담인 정교사(=임용고시를 거쳐 정식으로 발령받은 교사)와 함께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연극까지 지도하기 위해 수업이 끝난 시간에도 퇴근할 때까지 열성적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던 그 기간제 교사. 그분은 기간제 교사에 대해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일부 선생님 또는 학부모님들에게 오히려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인상을 갖게 해 주었던 분이었다.

그와 반대로 △△초등학교에서는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학교 일이나 관련된 업무에서 무조건 ‘열외’를 주장하는 분과 같이 근무한 적이 있었다. 이분은 같은 학년의 행사인데도 함께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동참하기는커녕 반 아이들과 어울리기조차 싫어하는 분이었다. 그 일 때문에 기간제 교사에 대한 편견까지 생기기도 했지만, ○○초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그 영어 선생님을 생각하며 나의 잘못된 생각을 고칠 수가 있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기간제 교사들과 함께 근무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학교의 입장에서는 ‘정교사’의 건강상 이유나 다른 기관에의 파견근무 또는 육아와 출산 등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곤 한다. 교육의 공백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그뿐만이 아니라 ‘스포츠 강사’와 ‘영어회화 전문강사’와 같은 교사들도 따로 두고 있다.

지난 8일 교육부는 교육계와 노동계 등의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서울에서 1차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심의위원회는 앞으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의 후속조치로 학교현장의 기간제 교사와 영어회화 전문강사, 스포츠 강사 등 교육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여부 등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심의위원회에 이해관계가 얽힌 다양한 단체들이 많은 양의 주문과 요구들을 쏟아내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초등교원 임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국의 교육대학생들의 심하게 반발하고, 이들과의 갈등 또한 갈수록 깊어져 가는 것 같다.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립 교육대학교’를 졸업한 뒤 임용고시를 한 번 만에 통과하지 못하고 재수 또는 삼수를 준비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기간제 교원을 정교사로 임용해주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각종 혜택에서 차별을 받는 것은 분명히 시정되어야 한다. 일부 관리자들과 학부모들이 바라보는 ‘기간제 교사’와 ‘정교사’에 그릇된 인식도 사라져야 할 적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용고시를 위해 몇 년을 고생해 온 학생들을 젖혀두고, 정교사로 발령을 내준다는 것 또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매사에 이런저런 해결책이 꼬이고 복잡해질수록 ‘원칙’이 그 묘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김용진 명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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