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칼럼]군함도를 통해 본 아베의 역사전쟁
[이정호 칼럼]군함도를 통해 본 아베의 역사전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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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도 덥던 올 여름에 극장가를 강타한 영화가 있다. 류승완 감독이 블록버스터 급을 자처하면서 내놓은 <군함도>이다. 개봉 나흘 만에 300만 관객 고지를 밟았지만 보름이 지난 지금은 대략 600만 명 수준으로 급락했다. 부자연스러운 갈등 상황이나 흥행 위주로 재미를 연출한 것이 역사성을 훼손했다는 평가와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그 이유이다. 일제의 만행 비판보다 조선인을 깎아내리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함에도 영화 <군함도>는 사람들에게 ‘하시마’를 지옥의 섬으로 다시 각인시키는 데 기여했으니 반가운 영화이다.

영화 <군함도>와는 다른, 소설 <군함도>가 있다. 소설이 영화를 구상하는 데 모티브를 제공했을 수는 있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이 소설의 시작은 작가 한수산이 1989년에 도쿄 어느 책방에서 ‘오카 마사하루’ 목사가 쓴 <원폭과 조선인>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일제 말기 국민 총동원령에 의해 43만 명이나 강제 징용당한 식민시대의 고난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10년의 취재와 거듭되는 집필 실패, 출간과 개작으로 비로소 완성되기까지 27년 세월이 지난 후 2016년에 소설 <군함도>(전2권, 창비)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소설 <군함도>의 배경은 나가사키와 그 앞바다에 있는 ‘하시마’라는 작은 섬이다. 이 ‘하시마’의 해저탄광에서 일어난 참상과 나가사키 원폭의 참상을 그린 소설이다. ‘하시마’는 ‘지옥섬’으로 불리기도 하고, 군함을 닮았다 하여 ‘군함도’라고도 불린다. 일제 말 전시체제에서 주요 에너지원인 석탄 채굴을 위해 동원된 조선인 강제노역자 800여 명 중 좁은 갱도에서 작업이 용이한 10대 소년들이 상당수 있었다. 또 그 중에서 최소 120명 이상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안 작가는 이 비극의 역사를 픽션보다는 핍진하게 복원하고자 전력을 다했다.

‘군함도’는 이미 2년 전에도 언론에 많이 오르내렸다. 일본 정부가 메이지유신 시대의 산업유산 군(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하면서 거기에 군함도도 포함시켰다. 한국 정부는 총 23곳 중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은 ‘군함도’를 포함해 모두 7곳에서 6만여 명이 동원된 것으로 파악하고 유네스코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이 신청한 산업유산 군 다수가 침략전쟁에 동원되었을 뿐더러 강제노역에 의해 운영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유네스코는 강제징용의 사실 기록을 조건부로 등록을 받아주었지만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근대화의 영웅으로 추앙한다. 그가 에도 막부 시대를 종식시키고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인물들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A급 전범 용의자였던 ‘기시 노부스케(아베 외조부)’와 정한론에 경도되어 청일전쟁을 주도한 ‘오오시마 요시마사(아베 고조부)’,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가스라 타로’,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그런데 일본은 ‘요시다 쇼인’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세계유산 군의 하나로 함께 등재했다.

‘쇼카손주쿠’는 산업유산이 아니라 사설 학당이다. 만 29세에 참수당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짧은 가르침이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세력으로 성장하여 일본을 근대화로 이끈 이유는 결국 대륙 진출을 위한 야욕을 실현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들은 대륙 진출을 위해 조선 정벌이 필수라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스승의 뜻을 계승했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이곳을 일본 근대화의 발상지로 기리고 있다. 일본의 산업혁명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침략의 도구로 악용되었으니 그것을 주도한 세력들은 태평양전쟁의 전범들일 뿐이다.

이에 대하여 일본 정부는 조상들의 악행에 대해 인정도 하고, 사과도 한 바 있다. 고노 담화(1993)에서 위안부의 군 관여를 인정했고, 무라야마 담화(1995)에서는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해 사과했다. 호소카와 전 총리도 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1993). 이런 발언이 나올 때만 해도 위안부 문제나 군함도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었다. 20여만 명이나 되는 위안부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총을 쏴서 죽이고 시체를 불태운 사실에 우리는 경악한다. 그 어린 나이에 군함도에서 지옥을 경험했던 증인들이 아직 살아서 증언하고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아베 총리는 지금 역사전쟁에 나서고 있다. 현직 총리로서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는 침략이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다고 말하고, 고노 담화에 대해서도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아베의 이런 행위가 일본 경제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과 자민당의 집권 욕망 때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군사대국화에 따른 미국의 이익과 맞물리면서 자위대의 역할 변질을 통해 아베의 신제국주의 망령을 꿈꾸는 저의가 드러나고 있다고도 말한다.

이정호 (수필가,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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