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일기]성숙한 시민의식
[목회일기]성숙한 시민의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1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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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양산에서 아파트 외벽 페인트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시끄럽다며 그의 생명줄인 밧줄을 잘라 숨지게 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아파트 아래위층에 사는 이웃끼리 층간소음으로 싸움을 벌인 끝에 이웃사람을 흉기로 찔러 죽인 사고도 있었다.

저녁시간이면 무더위를 피해 강변에 나와 휴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아침에 가보면 술병이며 과자봉지에 먹다 남은 음식 쓰레기들까지 그대로 두고 간 흔적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이런 눈살 찌푸려지는 일들은 모두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심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나라가 경제수준은 세계적이지만 시민의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이집트에서 제작한 짧은 영화 한편이 SNS로 전달되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한 가난한 소년이 기차역 앞에서 끈이 떨어진 낡은 고무 슬리퍼를 들고 있었다. 그때 부모님과 여행을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나온 한 소년이 벤치에서 새로 산 구두의 먼지를 닦고 있었다. 가난한 소년은 끈 떨어진 슬리퍼를 든 채 그 소년의 새 구두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기차가 들어온다는 종소리가 울리자 새 구두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벤치에서 급히 일어났다. 소년이 구두를 닦느라 꼼지락거리는 사이 기차는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사람들은 기차를 타러 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아끌고 붐비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지나가는 사이 그 아들은 한쪽 구두가 벗겨진 채로 기차에 오르게 되었지만 기차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가난한 소년이 바닥에 떨어진 구두 한 짝을 주워들고 움직이는 기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기차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자 가난한 소년은 구두를 잃어버린 그 소년이 서 있는 기차의 출입문을 향해 구두 한 짝을 힘껏 던졌다. 그러나 구두는 문에 부딪힌 채 밖으로 떨어졌고, 기차는 더욱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차 안의 소년은 한 짝뿐인 자신의 구두를 벗어 창밖의 소년을 향해 던져주었다. 두 소년이 서로 손을 흔드는 사이 기차는 점점 멀어져 갔다.”

구두 한 짝을 잃어버려 속상한 소년을 위해 가난한 소년이 다른 한 짝도 던져준 것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다.

운전은 안전이 중요한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도로에서 안전을 무시한 채 이기적인 운전을 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때로는 좁은 길 코너에 주차해놓은 차량 때문에 차들이 지나가는 데 불편을 겪고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빨리 가서 가까운 곳에 주차하고 볼일을 보면 좋겠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편할 것을 생각해서 불편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모든 삶의 현장에서 조금만 남을 배려한다면 모두가 웃을 수 있고, 한 사람의 이기심이 많은 사람을 짜증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은 직접 전화로 통화하기보다 문자메시지로 의사를 전달하고 SNS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 편리함이 SNS의 주장과 댓글들로 이어지면서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언론들도 미확인 보도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의 폭로성 인신공격이 도를 넘는가 하면, 검찰의 수사권 남용으로 고통당하고 상처받는 사람들도 많다.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도 이미 받은 상처는 씻을 수가 없는데 자기들의 목적 달성과 주장만 있을 뿐 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법과 제도, 공권력, 정치권력도 더 나은 사회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나 인권을 무시한 법집행, 공권력, 수사권, 행정권, 사법권이 판치는 사회는 설령 목적을 달성한다 해도 미개한 사회이지 성숙한 사회는 아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인권을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성경 이야기로,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발각된 한 여인을 끌고 예수께 왔다. 수치심에 얼굴도 들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인을 끌어다 놓고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느냐?”고 물었다. “너희 율법대로 하라”고 하면 거기 모인 사람들은 아무 죄의식 없이 돌을 들어 칠 기세였다. 그때 예수님은 아무 말 없이 땅바닥에 뭐라고 글을 쓰며 시간을 지체하다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시오.” 그랬더니 사람들은 하나둘 돌을 버리고 그곳을 떠나갔다.

나중에 예수와 그 여인만 남았을 때 예수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며 여인을 보내주셨다. 여인의 입장을 배려하고 용서하시는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대세력을 적으로 만들고 척결대상을 많이 만드는 사회가 아니라 용서와 관용, 화해와 배려가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 잘사는 자는 가난한 자를 배려하고, 높은 자는 낮은 자를 배려하고, 젊은이는 노인을 배려하고, 남자는 여자를 배려하고, 어른은 아이들을 배려하도록 하자. 제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유병곤 새울산교회 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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