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바와 강의
품바와 강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0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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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울산대 도서관에 ‘삼식이’라는 젊은이가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울산대 학생이 아니다. 그저 학교 근방에 사는 약간 바보스러운 총각이다. 도서관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늘 부러워 마냥 그곳에 앉아있기만 했다. 그래도 대학생이 된 기분인 듯 늘 만족해하는 얼굴이었다. 그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모두들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용케 곁눈질해 보았더니 공부가 아니라 인기 연예인들의 예쁜 얼굴만 열심히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지만 그래도 봉사는 참 잘한다. 매일 아침 일찍 학교 앞 바보사거리에 나타나 많은 가게들의 개장 준비를 죄다 도와주는 착한 총각인 것이다. 어디에 사는지 그의 진짜 이름이 뭔지 잘 모르지만 한때 대학가에서 제법 알아주는 유명인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삼식이가 또 한 사람 있다. 만능 재주꾼 ‘품바’다. 북, 장구, 엿가위, 꽹과리, 난장타악, 성대모사, 만담, 노래, 춤 등 재주가 다양하다. 이 품바가 각설이 흥이 끝나면 만 원짜리 지폐가 여기저기서 우르르 깡통으로 들어온다. 대단한 기술이다. 관중을 완전히 몰입케 하는 ‘보여주기 식’ 기술이다.

그의 목표는 5분만 보면 30분이고 30분을 보면 무조건 1시간으로 간다는 각오로 품바를 한다. 각 지방의 축제 때 빼놓지 않고 볼 수 있는 그의 품바 공연은 그야말로 흥미와 후련함의 극치다.

지금의 품바는 옛날 걸인들이 동냥하기 위해 불렀던 각설이와 확연히 다르다. 뭉클한 풍자와 해학을 연출하는 품바는 속일 수 없는 참된 웃음전도사다. 걸쭉한 입담과 타령으로 구경꾼들을 휘어잡아 배꼽을 잡게 만드니 말이다.

원래 품바는 옛날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에서 처음 보인다. 민초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쌓였던 울분과 억울함, 그리고 그들에 대한 멸시나 학대 등이 한숨으로 뿜어져 나오는 한 서린 소리였다. 예로부터 가난한 자, 역모에 몰린 자, 소외된 자 등 피지배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걸인 행세를 하면서 현실에 대한 한과 울분을 표출했던 것에 기인한다.

구걸할 때 ‘품바’라는 소리를 내어 ‘예, 왔습니다. 한 푼 보태주시오. 타령 들어갑니다’ 같은 쑥스러운 말 대신에 썼다고 한다. ‘품(稟)’자는 ‘주다’ ‘받다’는 뜻이다. 또 다른 뜻으로 품앗이, 품삯 등 수고의 의미인 ‘품’에서 나왔다고 한다. 무엇보다 품바라는 말에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는 선한 의미가 들어있다니 모두의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는 것 같다.

최근 방학을 맞이하여 나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주민봉사를 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재능기부다. 한 시립도서관에서 실시하는 ‘도서관에서 만나는 일본어교실’이라는 포스팅이다.

좀 생소한 언어라 주민 모두들 강의가 재미있어 관심이 뜨겁다. 낯선 외국어라는 이유도 있을 뿐 아니라 강의방법을 좀 색다르게 시도해 본 것도 한몫하고 있는 것 같다. 소위 ‘품바식 강의’다.

즉 무대를 마음대로 사용해 보는 것, 손에 들고 있는 마이크를 최대한 능숙하게 사용하고 정확하게 발성을 하는 것, 무대에 설치된 보드 판에 크게 판서를 해보는 것, 강의내용도 ‘삶의 한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흥미롭게 설명해보는 것이다. 게다가 수강생들의 많은 눈동자를 사로잡는 것, 금방 설명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반복해보는 교수방법이다. 수강생의 눈을 절대 떼지 못하게 하는 살아있는 품바식 강의인 셈이다. 그러나 각설이 타령은 하지 않는다. 품바라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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