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조칼럼] ‘쉼표’를 친구처럼
[김부조칼럼] ‘쉼표’를 친구처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07 1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낯선 물음표를/ 친구처럼 맞이하라// 따스한 느낌표에/ 감사의 눈길을 보내라// 차가운 마침표와는/ 자주, 거리를 두라// 가끔은, 외로운 쉼표와/ 함께 쉬어 가라(자작시 ‘문장 부호에 대하여’)

아침 출근길, 자신이 운전하는 승용차가 옆을 달리는 차보다 뒤처지기라도 하면 왠지 조바심이 난다. 지하철 전동차의 출입문이 열리고 내릴 승객이 모두 내리기도 전에 우리는 서둘러 발을 집어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출근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허둥지둥 서둘러 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출근해서 가방을 열어 보니, 밤잠까지 설쳐 대며 검토한 중요 서류가 보이지 않는다. 집에 두고 온 것이다. 아침 회의시간은 다가오고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몸은 뻣뻣하게 굳어진다. 거기에다 휴대폰까지 두고 왔다. 이 모든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바로 서두름 때문이다. 아침시간은 뭔가 쫓기듯 바빠야 하는 게 지금껏 이어져 온 패턴이므로 우리는 습관적으로 서두르게 된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여지없이 ‘속패(速敗)’로 이어지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의 서두름은 비단 아침에만 빚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아침은 그 서막일 뿐 우리들의 조급증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떤 사람은 잠자는 시간도 참기 어려워한다. 그것은 빨리 내일이 밝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이고, 그 행사를 잘 마쳐야 큰 이득이 생기니 빨리 날이 밝아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일과 돈에, 그만 사람이 지배당하고 만 것이다.

가끔 이런 가정을 해 본다. 만약 자동차가 멈춤 없이 계속 달리기만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어느 구간까지는 잘 달려가겠지만 결국은 기름이 바닥나 그만 멈춰 서 버리고 말 것이다. 달려오는 도중에 잠시 멈춰 기름을 채우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다. 게다가 엔진에 무리가 가해져 그만 고장이 나고 말 것이다. 설령 기름을 다시 채운다 해도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극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급한 마음은 대체로 짧은 생각을 낳게 되고, 그런 생활 패턴으로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사고와 불행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우리는 속칭 ‘빨리 빨리 문화’에 이미 젖어 날마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숨 막히는 생존경쟁에서 과속 페달을 힘껏 밟아 대고 있다.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쉼표’의 아름다운 의미는 이미 그 빛이 바랜 채 마침표도 생략된 길고 긴 문장 잇기에만 여념이 없다.

이러한 조급함에서 벗어나 인생을 좀 더 오래 누리며 자신이 품었던 꿈을 활짝 펼치려면, 잠시 멈춰 서서 쉬어가는 여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멈추어 쉼표를 찍은 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아름다운 새들의 지저귐과 너그러운 나무들의 대화가 귓전을 은은히 울릴 것이다. 그렇게 멈추어 쉼표를 찍은 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면 갓 태어난 아기 새의 몸짓과, 영롱한 이슬을 머금고 수줍게 핀 들꽃과, 너그럽게 침묵하는 여유의 숲이 반겨 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가 오랜 동안 품고 있었던 푸른 꿈도 보일지 모른다. 이 모든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무작정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오느라 보고 듣지 못한 채 놓쳐 버린 소중한 것들이다.

무작정 달려가다 보면 놓치는 게 많다. 잠시 쉬어 가며 파란 하늘에 드문드문 걸린 조각구름도 감상하고, 흐르는 시냇물에 두 발을 담근 채 잊혀진 옛 노래도 한 곡쯤 기억해 내는 여유가 필요하다. 무얼 망설이는가? 지금 바로 삶의 자동차를 멈추고 진정한 삶의 ‘쉼표’ 하나를 느긋하게 찍어 보기 바란다. 아마 당신의 인생은, 쉬어 가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싱그러움으로 당신을 반갑게 맞이해 줄 것이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